'비외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2.24 비외탕 - 바이올린 협주곡 5번
  2. 2008.01.27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1)
  3. 2008.01.17 장영주(Sarah Chang)
  4. 2008.01.13 알렉산더 마르코프(Alexander Markov) (4)

 파가니니를 기점으로 뛰어난 비르투오소들이 쏟아져 나오던 19세기 유럽, 벨기에에서는 앙리 비외탕이라는 걸출한 바이올리니스트가 활약을 하고 있었다. 현대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프랑코 벨기에 바이올린 악파의 계승자로 일컬어지는 그는 유진 이자이라는 또다른 걸출한 비르투오소를 키워냈고, 이는 아르투르 그뤼미오로 이어졌다. 당대의 비르투오소들이 그랬듯 비외탕 역시 뛰어난 연주자였던 동시에 뛰어난 작곡가였다. 모두 7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 여러 곡의 기교적 소품과 변주곡을 남겼는데, 그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단연 최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은 중간 부분에 벨기에의 작곡가 그레트리(Andre Gretry)의 오페라 선율이 사용되고 있어 ‘그레트리’란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한 한데, 1862년 초연 당시 베를리오즈로부터 “나에게 이 곡은 지극히 위대한 동시에 새롭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또 “만약 비외탕이 뛰어난 비르투오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서 환호할 수 있을 텐데···”라고도 말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은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협주곡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단악장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관현악 부분의 규모와 역할이 더욱 확대되어 독주 바이올린과 관현악의 조화가 돋보이는 점 등에서 남다른 음악적 깊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페라풍의 노래하는 듯한 비장한 멜로디와 화려한 기교로 점철된 이 곡은 비단 그의 작품 뿐만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바이올린 명곡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Vieuxtemps - Violin concerto no.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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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페츠는 항상 나의 우상이었다. 소년시절의 나는 하이페츠의 초기 녹음들을 들으며 자랐다. 하이페츠는 당시에도 유명했고, 그 후에도 여전히 위대했다. 이제 내가 늙어 그 음반들을 다시 들으며 생각해 보니 그 언제보다도 더욱 위대하다.”
                                                                                                - 요셉 긴골드
                                                                                                                 
“1890년에서 1905년 사이에 태어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몰락해 버리는 처지가 되었다. 세계의 모든 오케스트라와 음악학교는 모두 하이페츠의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바이올리니스트를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 헨리 로스
                                                                                                                               
“역사적으로 절대 완벽한 연주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하이페츠가 유일한 예다.”
                                                                                                - 칼 플레쉬
  


 바이올린 애호가들로부터 전문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기호를 떠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한명 꼽으라면 대부분 야사 하이페츠를 거론할 정도로 그가 바이올린으로 이룬 업적은 방대한 동시에 위대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독보적 입지가 너무나 커서인지, 하이페츠와 견줄 연주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 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살아 생전에 전설로 남은 연주자 하이페츠, 그의 이름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 아니 모든 연주가들에게 있어 '강박관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연주는 한마디로 인류 역사상 겨우 몇몇 만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 그 자체'의 경지에 이르렀던 연주자였다. 완벽한 테크닉으로 악보 속의 모든 음표를 하나도 빠뜨림없이 악보 밖으로 뿜어내는 정교함, 폭넓은 표현과 탁월한 균형감각, 작품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강력한 보잉과 강렬한 비브라토, 자유자재의 템포 조절력 그리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 그의 완벽한 연주를 접하고 나면 보통 연주가들은 '모차르트 앞에 선 살리에리'를 이해하게 된다.
 사실 현대에도 정말 뛰어난 연주자는 너무 많다. 흔히 이런 뛰어난 연주자들을 묘사하는 위해 '믿을 수 없는 연주', '환상적인 테크닉' 등등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야샤 하이페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잡다한 수식어구가 필요가 없다. 단지 '완벽'이라는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하이페츠는 20세기가 시작되던 1901년 2월 2일 러시아의 빌나(Wilna)에서 태어나 3살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았다. 6세때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으로 최초의 공개 연주회를 가졌으며, 이후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어 9세때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명교수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von Auer, 1845-1930, 러시아)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아우어는 바이올린 음악사에서 20세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밀스타인,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 1889-1985, 러시아), 엘만(Mischa Elman, 1891-1967, 러시아) 등을 길러내 '러시아악파'라는 계보를 이룩한 19세기 후반 명바이올리니스트이자 명교육자로,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올린협주곡을 헌정하려 했으나, '연주 불가능'이라고 작품을 평가절하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이페츠는 만일 아우어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의 전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전에 말한 바가 있고, 또한 아우어 교수의 탁월한 음악교육에 찬사를 보내면서 "신동으로 대접받는 것은 질병과 같은 것이며 치명적인 것이다. 나는 운좋게도 겨우 살아남은 몇 안되는 신동이라 불리우던 사람이었으며, 이는 전적으로 위대한 음악스승인 아우어와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덕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12년, 11살의 하이페츠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 및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게 된다. 바로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하였고, 이것은 전설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라이프치히에서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하는 12살의 하이페츠를 본 당대 최고의 거장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 오스트리아)는 역시 당대의 거장 짐발리스트에게 말하기를 "자네나 나나 이제는 바이올린을 내 던져 박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유럽 각지에서 천재성을 과시하던 그는 1917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데뷔연주회를 가졌고, 미국에서의 데뷔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후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결국 하이페츠는 그대로 미국에 눌러않게 만들었다. 20대에 이미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그는 192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1940년에는 비버리힐즈에 평생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나이 19세되던 1920년, 런던 데뷔 무대를 본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 '제발 잠들기 전, 기도 대신 아무 곡이나 서툴게 연주해라. 인간으로 태어나 그렇게 신처럼 완벽하게 연주하다간 자칫 하느님의 시기로 요절할지도 모른다'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의 존재 이후 그동안 '19세기의 것'이던 연주 스타일은 '20세기의 것'으로 변했버렸다. 즉 하이페츠에 의해 바이올린 해석의 '20세기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많은 연주자들이 그의 스타일을 추종하였다. 이로 인해 하이페츠보다 나이에서 한 세대 앞서 전성기의 나이를 맞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 빛을 잃고 일찍 무대를 떠나 교육자로 전환한 경우도 많았다.

 사진이나 비디오로 남아있는 하이페츠의 연주 모습을 보면 매우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꼿꼿이 선채로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고 거의 무표정한 상태을 끝까지 유지하며 연주에 몰입한다. 그래서인지 하이페츠의 연주는 '차갑다', '메마르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RCA레코드사의 찰스 오코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의 정교한 손놀림 때문일 것이고, 또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가리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이페츠가 언제나 음악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본능과 같은 분석력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래도 또 누군가가 그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다" 라고 말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처럼 자신의 감정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음악가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이페츠의 활잡는 방식은 활을 팔목 상부에 놓고 집게 손가락의 누름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아우어 교수의 방식이었다. 몸에서 떨어진 좌우 팔꿈치가 현에 강한 압력을 더해 주었다.(러시아악파 이전의 활주법은 집게 손가락의 누름을 강조하지 않았고, 오른팔꿈치도 높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요아힘의 계보를 잇는 독일악파의 경우는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이기도 했다.) 거기에다 팔목과 팔을 움직여 내는 빠른 비브라토가 더해져 강렬한 빛을 발했다. 이같은 연주법상의 개성과 함께 하이페츠는 극도의 집중력과 대담함, 가까이 하기 힘든 위엄, 완벽한 콘트롤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그의 소리는 힘이 넘쳤고 당시의 바이올린계에 따라다니던 애수어린 감상적인 소리를 제거해 버렸다.
 하이페츠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의 연주가 너무 빠른 나머지 편하게 감상하기엔 어렵다는 것과 그의 음색이나 비브라토 등이 너무나 격렬해서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의 연주는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보다 1.5배 정도 빠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단순히 허겁지겁 '빨리 켜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하이페츠는 그 놀라운 속도에서도 정확한 음정과 발군의 활 제어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왼손의 컨트롤로 인해 사실상 그 패시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하는 모든 것'을 다 해내고 있다.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강렬함은 바로 손가락의 마디를 사용한 비브라토와 톡특한 러시아스타일의 활기법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스턴, 그리고 펄만 같은 대가들이 왜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하이페츠 연주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고 하는지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펄만이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과 <스코틀랜드환상곡>을 녹음하기 전, 기자가 왜 당신은 브루흐의 바이올린 작품을 녹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 곡은 이미 하이페츠에 의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녹음이 있기에 하지 않고 있다는 대답은 하이페츠가 20세 중반 이후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하이페츠는 솔리스트로서의 활동 외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루빈스타인, 역시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포이어만과 더불어 이른바 '백만불짜리 트리오'를 결성하여 실내악 연주활동도 하였다. 이 트리오는 1942년 포이어만이 사망한 후에도 피아티고르스키를 영입하여 수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명성과는 달리 이 트리오의 연주는 그다지 깊은 조화를 들려주지 못하였는데, 루빈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면 "순전히 하이페츠의 음색과 고집 때문"이었다고 한다.

 셰링(Henryk Szeryng, 1918-1988, 폴란드), 골드베르크(Szymon Goldberg, 1909-1993, 폴란드), 로스탈(Max Rostal, 1905-1991, 오스트리아), 모리니(Erica Morini, 1904-1995, 오스트리아) 등의 스승으로,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했던 20세기의 명교수 칼 플레쉬(Carl Flesch, 1873-1944, 헝가리) 마저도 "역사적으로 절대 완벽한 연주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하이페츠가 유일한 예다."라는 말은 하이페츠의 연주를 평가하는 결정적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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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분야에든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마치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듯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왠지 보통사람들과는 완전히 종 자체가 다른 생명체인 듯한 느낌이 들고,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장영주도 바로 그런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너무나 뛰어난 능력 때문에 그들의 능력은 후천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고,보통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편견에 자연스레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최고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범인과는 차원이 다른 재능을 가진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일반인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피나는 노력이 숨겨져 있는 것을 필연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노력이 때로는 너무나 미련할 정도로 처절한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에, 그 피나는 과정을 알게 되면, 소위 우리가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이 타고난 천재성이 아닌 피나는 과정을 감내하고 끝없이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는 인내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재능이라는 것은 남들보다 약간 더 빨리 진보할 수 있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이러한 일반론마저 적용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천재성'은 드물긴 하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물론 노력이 수반되지만 천재적인 재능 자체가 너무나 뛰어나서 노력조차 그 빛이 바래지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좌절을 하는 길 밖에 없다.
 음악계에도 수많은 천재들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나올 것이다. 천재 음악가 대부분이 어려서부터 혹독한 연습을 감내하고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천재로 양산되어 왔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들 대부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천재(후에 언급한)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냥 보통 사람도 열심히 노력하면 뛰어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말이다.
 장영주(사라장)는 후자에 속한다. 바이올린계의 대모 도로시 딜레이가 바이올린 역사상 전무 후무한 천재성이라고 극찬을 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론 지금 지구상에는 장영주만큼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널려 있고 개인적 취향에 따라 장영주보다 훨씬 더 높은 음악적 점수를 줄 수 있는 연주자들도 많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장영주만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호한 '노'다. 이유가 알고 싶으면 장영주가 9세 때 녹음한 데뷔 앨범을 들어보라.
       

       비외탕 바이올린 협주곡 5번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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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우예주라는 우리나라의 출신의 소녀가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뉴욕에서 완주를 해서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사실 지금은 수준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이제는 갓 10대에 접어든 아이들이 기성 연주자 뺨칠 정도로 귀신같이 연주를 하는 것을 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어쨌건 간에, 이 우예주를 지도한 스승이 맨하탄 음대의 알버트 마르코프 교수인데, 알버트 마르코프 교수의 아들이 알렉산더 마르코프이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의 아들인 역시 이고르 오이스트라흐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듯이,역시 피는 못속이나보다. 아들은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잘나가는 연주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니 말이다.
 19세 때 파가니니 콩쿨을 석권하고 기교파 연주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 러시아 태생의 연주자도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마르코프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던 연주는 역시 그의 화려한 테크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파가니니 카프 리스의 라이브 연주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DVD로도 제작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곡이기도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의 파가니니 연주도 좋지만, 비외탕 협주곡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명연이라고 생각된다. 비외탕 협주곡은 4번과 5번 외에는 사실 그다지 많이 연주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연주한 2번을 듣고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후 가장 즐겨 듣는 곡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파가니니 카프리스와, 눈부신 비외탕 연주를 올려본다.

                                              파가니니 - 카프리스 24번

                                              비외탕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중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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