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신기에 가까운 바이올린 테크닉으로 전 유럽의 음악계를 충격에 빠뜨린 니콜로 파가니니..
 수많은 국제 콩쿨을 통해 뛰어난 연주자들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재에도 진정한 파가니니의 후예라고 칭할 수 있는 연주자들은 그리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해드릴 Roman Kim은 그 예외가 될 충분한 자격이 있는 연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대가(일반적인 세계적인 연주자 레벨이 아닌 전설적인 대가)를 능가하는 수준의 테크닉적인 완벽성에, 호소력 짙은 음악성까지 겸비하여 진정한 파가니니의 후예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데요.
실력에 비해 너무나 인지도가 낮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해외의 한 바이올린 포럼에서는 Roman Kim의 테크닉이 너무나 완벽해서, Marfan 증후군 (결합조직을 침범하는 선천성 유전질환으로, 손가락 관절이 비정상적으로 유연할 수 있음)이 아니냐는 논쟁이 오갈 정도로 논란이 있는 정도였습니다. 
 대가들도 부분적으로는 약점을 보이는 힘든 더블 하모닉스, 핑거드 옥타브, 왼손 피치카토, 10도 더블 스탑 등 최고난도의 바이올린 테크닉은 Roman Kim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특별히 Roman Kim은 작곡 능력도 뛰어나서 본인이 직접 작곡한 다양한 곡들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자신의 뛰어난 연주력을 최대한 과시할 수 있는 showpiece 위주의 곡들이 대부분이지만,  바흐나 이자이를 연상케하는 깊이 있는 곡들도 있어 놀랍습니다. 
 그럼 Roman Kim의 충격적인 연주 감상하시죠~


1. N. Paganini - God save the King

2. N.Paganini - I PALPITI (Roman Kim's Edition)


3. J. S. Bach - Air [Violin Solo]


4. Roman Kim plays E.Sauret Cad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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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4악장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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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이 분야를 널리 대중에게 보급시킨 선구자로 바네사 메이를 꼽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그녀의 연주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전자 바이올린 음악의 역사에 그녀의 이름이 미치는 영향


력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1978년 싱가폴에서 태어나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바네사 메이는 어린 시절 촉망받는 신


동이었다. 10세였던 1989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처음으로 협연을 가졌고 차이코프


스키와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최연소 레코딩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출중한 신동과 천재들이 난무하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녀의 이러한 화려한 경


력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녀의 존재를 처음으로 전세계에 알린 것은 1995년 발매한 'Violin player'라는 앨범이었다. 


당시만 해도 전자 바이올린이라는 장르는 상당히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 클래식 악


기라는 등식이 깨지지 않던 시기였고, 더군다나 도발적인 옷차림으로 앨범을 장식까지 했으니,


음악 외적으로도 당시에는 음악계에 커다른 반향을 일으켰다.


 더군다나 정통 클래식 교육을 받은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가 생소한 팝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는 것 또한 당시 음악계에서는 '이단적'인 행위였으니, 음악을 제외한 부분에서도 상당한 논란


거리였다. 


 이렇게 주목을 끄는 가운데 만일 그녀가 연주했던 앨범의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졌다면 그녀


는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튀려고 발악했던 한 연주자 정도로 사라져갔겠지만, 


 당시 발매되었던 Violin Player라는 앨범은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고,


결국 그녀는 전자 바이올리니스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연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소치 동계 올림픽에 선수로서 출전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자신이 20세가 될 때까


지 어머니에게 혹사당하면서 엄격한 연습을 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이슈가 되기


도 했다.


최근에는 이렇게 음악 외적인 분야에서 주목을 끌고 있지만, 향후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들려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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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은 대표적인 클래식 악기이지만, 다채로운 표현력으로 최근에는 팝이나 락, 크로스오


버와 같은 장르에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이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게 된 계기는 아마도 전자 바이올린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이 아닌가 한다. 이전에도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주


자들은 있었겠지만, 전자 바이올린이나 크로스오버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역시


바네사 메이일 것이다. 


 정통 클래식 바이올린 코스를 거쳐 전자 바이올리니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바네사 메


이가 이러한 크로스오버 전자 바이올리니스트의 1세대였다면, 지금 소개할 데이빗 가렛은 그 


뒤를 잇는 명실상부한 제 2세대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출신의 데이빗 가렛은 정통 클래식 바이올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 성인이 될 때까지


도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촉망되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10세에 무대에 최초로 데뷔했고, 13세에 주빈 메타와 협연했으며,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


과 계약을 맺어 이미 10대 때에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을 녹음하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이차


크 펄만의 수제자로 교육을 받았다. 


 데이빗 가렛은 락 이나 팝 바이올리니스트의 관점을 벗어나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의 기준


에서 평가하더라도 세계 정상급의 테크닉을 보유하고 있는 보기 드문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바네사 메이도 물론 훌륭하지만,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한


음반을 들어보면 기교적인 미숙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데이빗 가렛 같은 경우는 워낙 출


중한 테크니션이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네사 메이보다는 훨씬 차원이 높은 연주자라고 볼 수


있다. 


 데이빗 가렛은 클래식 레퍼토리를 대중에게 좀 더 친숙하게 소개하기위한 연주 뿐만 아니라, 


헤비메탈 음악을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락밴드를 함께 동원한 거대한 스케일로 재탄생시키기


도 하고, 최근에는 '파가니니'의 일생을 다룬 영화에도 출연하여 다채로운 음악 활동을 보여


주고 있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단순히 데이빗 가렛이 그저그런 크로스 오버 뮤지션 정도로만


생각할지 모르나, 데이빗 가렛은 현재도 정통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투어에도 소홀히 하고 있


지 않다고 한다.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열정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앞날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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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 상부한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

이스라엘 출신의 유태계 바이올리니스트로 소아마비의 장애를 딛고 1964년 18세의 나이로 레

벤트리트 콩쿨에서 최연소로 우승을 차지하게 되고, 이후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이 시대

의 진정한 대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줄리어드에서 교편을 잡았고 현재는 지휘자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이차크 펄만의 음색은 두텁고 밀도 있는 비브라토에 바탕을 둔 따뜻한 사운드가 특징인데,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난곡에서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테크닉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에게 이차크 펄만은 좌절감을 안겨주는 연주자로 대단히 유명한데, 그 이유

는 펄만이 연주하는 자세는 그 어떤 난곡이나 어려운 테크닉에서도 너무도 편안하고 쉽게 보여

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대단히 연주하기 쉽고 만만할 것이라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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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여 년 전 쯤이었을까 , 여느 때처럼 저녁에 듣고 있던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서 이제껏 듣지 못했던 강렬할 곡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클래식 곡 같으면서도 자유분방하고, 격식이 있으면서도 격식을 갖추지 않은 듯한...마치 스페인의 플라멩고 같이 정열적인 그 곡. 그 곡은 바로 차르다시였다. 지금이야 그냥 인터넷만 뒤지면 차르다시에 대한 정보가 산더미 같이 쏟아져 나오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에 접속하기가 어렵던 시절이라 이 매혹적인 곡의 정체를 당최 알 수 없었던 암울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레코드점에서 여지껏 듣도 보지도 못한 이 뚱뚱이 아저씨가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도이치 그라모폰의 노란 딱지를 달고 음반을 떡하니 출시한 것을 보게 되었다. 그냥 신예 연주자이겠거니 하고 지나칠려고 하던 중,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곡의 1번 타이틀이었던 차르다시였다. 알고 보니, 로비 라카토쉬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고 있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것이다. 정식으로 클래식 바이올린 코스를 밟은 그는 밥줄로 집시 음악을 연주하기로 작정하였던 모양이다. 테이프를 사서 재생을 하는 순간 집시 특유의 짙은 멜로디가 귀를 파고들었다. 차르다시 뿐만 아니라 이 앨범에는 다양한 종류의 집시 음악과 영화음악이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녹아 있는데, 모짜르트나 베토벤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1번 트랙에서 시작해서 뒷면의 끝트랙까지 한시도 멈출 수가 없었다. 현재에는 이 앨범 뿐만 아니라 몇 개의 앨범을 더 출시했는데, 여러 뛰어난 앨범 가운데서도 단연 이 앨범은 집시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앨범이라 할 수 있고, 현재 활동하는 세르게이 트레파노프나 렌드바이 같은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들과 비교해도 그의 연주는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장기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왼손 피치카토인데, 연주 장면을 실제로 보고 있지 않으면, 마치 기타의 트레몰로를 연주하는 듯한 믿을 수 없는 연주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이 앨범 자켓에 쓰여 있던 멘트가 '귀신이 곡할 왼손 피치카토'였는데 실제로 들어보면 이 말이 결코 상투적인 광고문구가 아님을 알 수 있고, 이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곡이 아래의 two guitar이다. 분명 바이올린 두 대가 연주하는데, 분명 기타가 연주하는 듯한 말도 안되는 상황..아래에서 한 번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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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을 맞은 지도 어언 2달 째로 접어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시점에서 현재 세계에서 누가 가장 바이올린을 잘하냐는 유치한 질문을 한다면 누구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지금은 전성기를 약간 지난 펄만?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크레머? 최근 줄리어드에서 교편을 잡은 한국의 자존심 정경화? 아니면 장영주? 완벽한 레핀? 떠오르는 힐러리 한? 샤함? 어차피 질문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답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문을 약간 바꿔서, 현재 이 시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막심 벤게로프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 막심 벤게로프, 그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1974년 시베리아에서 출생한 막심 벤게로프는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노란 아이였다. 자신의 말에 의하면 말을 배우기도 전에 바이올린부터 손에 잡고 있었고, 코흘리개 유년 시절에도 지쳐 쓰러질 때까지 바이올린을 연습했다고 한다. 타고난 천재성,  무시무시한 노력, 게다가 자카르 브론이라는 명조련사를 만난 그는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었고, 이러한 완벽한 환경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제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며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게 만들었다. 1990년 칼플레쉬 콩쿨 우승을 계기로 세계무대 정복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더이상 정복할 곳이 없는, 지구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벤게로프 연주의 특징은 굉장히 개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소리나 음악 스타일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전형적인 고전적 바이올린 주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특유의 얕고 빠른 비브라토는 일반적인 연주자들이 구사하는 둥글고 깊이 있는 비브라토와 완전히 성격이 다르고, 연주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하는 터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과 열정은 다른 연주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연주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연주를 듣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연주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하이페츠의 활을 전수 받음으로써 하이페츠의 공식적인 후계자가 되어 버린 막심 벤게로프. 거침없는 그의 행보를 막을 자는 당분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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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처럼 뛰어난 기량을 가진 연주자가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시기에 자신의 존재를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도 확실한 방법은 유명 콩쿨에 나가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콩쿨에 나가기 전에는 그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연주자에 불과했다가,  콩쿨에서 우승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사실 콩쿨에서 우승하는 것이, 더군다나 그것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콩쿨이라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는데, 이런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콩쿨조차도 한 두개가 아니고, 수백명의 콩쿨 우승자들이 매년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연주자가 콩쿨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입증하고 대중적으로도 뛰어난 연주자로 인정을 받았다면, 그 연주자의 실력은 확실히 입증된 셈이 된다.
 그런데, 이런 콩쿨을 전혀 통하지 않고도 뛰어난,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로 활동을 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그것은 정말로 뛰어난 연주자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콩쿨을 통한 검증조차 필요 없는 실력...조슈아 벨이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조슈아 벨은 사실 세계적인 연주자가 5-6 세 때부터 대략 20세까지 일반적으로 밟게되는 혹독한 스파르타식 트레이닝 과정을 밟지 않았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냥 취미로 하는 수준이었고, 오히려 테니스에 두각을 보여 주대표로 활약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조슈아 벨이 진정한 음악가의 길로 가게 한 계기는 한 음악 캠프에 참가한 것이라고 하는데, 우연히 참가한 음악 캠프에서 젊은 연주자들의 뛰어난 실력과 열정에 충격을 받고 그 때부터 혹독한 연습에 돌입하게 되고, 감추어져 있던 천재성은 이러한 노력에 의해 결실을 보게 된다.
 조슈아 벨의 연주의 특성은 한 마디로 '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만의 고유한 개성이 인정되던 20세기 초와는 달리 오늘날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웬만큼 완벽한 테크닉과 강렬한 소리로 무장을 하지 않고서는 이 험난한 음악계에서 사실상 살아남기 힘들다. 조슈아 벨의 연주는 언뜻 처음 들으면 너무나 가냘파 보인다. 이렇게 여린 소리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그의 음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음악적'이라는 데에 있다. 화려한 기교만을 앞세워 귀를 현혹시키는 연주자가 난무하는 지금 그의 연주를 계속 접하다보면, '아름다운' 연주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그의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는 최고의 테크니션임이 분명하지만 연주 속에서 결코 테크닉을 내세우지 않는다. 테크닉이 느껴지지 않는 연주자...이것이 바로 최고의 테크니션이 아닐까 한다.
 조슈아 벨의 이러한 음색과 음악은 스승 조셉 긴골드에 의해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조셉 긴골드는 테크닉 자체보다는 음악 자체를 중요시하였는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조셉 긴골드의 연주를 들어보면 조슈아 벨의 연주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비브라토의 사용, 절제된 연주, 우아한 프레이징이 서로 너무 닮아 있다. 궁금하다면 찾아서 들어보시길...
 조슈아 벨은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 뿐만 아니라 컨트리 뮤직, 그리고 영화 음악, 크로스 오버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번스타인이나 거슈윈의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유명한 영화 '레드 바이올린'의 바이올린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어느덧 40 줄에 접어든 이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앞날이 정말로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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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페츠는 항상 나의 우상이었다. 소년시절의 나는 하이페츠의 초기 녹음들을 들으며 자랐다. 하이페츠는 당시에도 유명했고, 그 후에도 여전히 위대했다. 이제 내가 늙어 그 음반들을 다시 들으며 생각해 보니 그 언제보다도 더욱 위대하다.”
                                                                                                - 요셉 긴골드
                                                                                                                 
“1890년에서 1905년 사이에 태어난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몰락해 버리는 처지가 되었다. 세계의 모든 오케스트라와 음악학교는 모두 하이페츠의 제국에 속하게 되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바이올리니스트를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 헨리 로스
                                                                                                                               
“역사적으로 절대 완벽한 연주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하이페츠가 유일한 예다.”
                                                                                                - 칼 플레쉬
  


 바이올린 애호가들로부터 전문 연주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기호를 떠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를 한명 꼽으라면 대부분 야사 하이페츠를 거론할 정도로 그가 바이올린으로 이룬 업적은 방대한 동시에 위대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독보적 입지가 너무나 커서인지, 하이페츠와 견줄 연주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한 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살아 생전에 전설로 남은 연주자 하이페츠, 그의 이름은 모든 바이올리니스트, 아니 모든 연주가들에게 있어 '강박관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연주는 한마디로 인류 역사상 겨우 몇몇 만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 그 자체'의 경지에 이르렀던 연주자였다. 완벽한 테크닉으로 악보 속의 모든 음표를 하나도 빠뜨림없이 악보 밖으로 뿜어내는 정교함, 폭넓은 표현과 탁월한 균형감각, 작품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 강력한 보잉과 강렬한 비브라토, 자유자재의 템포 조절력 그리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 그의 완벽한 연주를 접하고 나면 보통 연주가들은 '모차르트 앞에 선 살리에리'를 이해하게 된다.
 사실 현대에도 정말 뛰어난 연주자는 너무 많다. 흔히 이런 뛰어난 연주자들을 묘사하는 위해 '믿을 수 없는 연주', '환상적인 테크닉' 등등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야샤 하이페츠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잡다한 수식어구가 필요가 없다. 단지 '완벽'이라는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하이페츠는 20세기가 시작되던 1901년 2월 2일 러시아의 빌나(Wilna)에서 태어나 3살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았다. 6세때 멘델스존의 바이올린협주곡으로 최초의 공개 연주회를 가졌으며, 이후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어 9세때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명교수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von Auer, 1845-1930, 러시아)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아우어는 바이올린 음악사에서 20세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밀스타인,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 1889-1985, 러시아), 엘만(Mischa Elman, 1891-1967, 러시아) 등을 길러내 '러시아악파'라는 계보를 이룩한 19세기 후반 명바이올리니스트이자 명교육자로,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올린협주곡을 헌정하려 했으나, '연주 불가능'이라고 작품을 평가절하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이페츠는 만일 아우어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지금의 전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전에 말한 바가 있고, 또한 아우어 교수의 탁월한 음악교육에 찬사를 보내면서 "신동으로 대접받는 것은 질병과 같은 것이며 치명적인 것이다. 나는 운좋게도 겨우 살아남은 몇 안되는 신동이라 불리우던 사람이었으며, 이는 전적으로 위대한 음악스승인 아우어와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덕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1912년, 11살의 하이페츠는 당대 최고의 지휘자 및 교향악단과 협연을 하게 된다. 바로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을 협연하였고, 이것은 전설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라이프치히에서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연주하는 12살의 하이페츠를 본 당대 최고의 거장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1962, 오스트리아)는 역시 당대의 거장 짐발리스트에게 말하기를 "자네나 나나 이제는 바이올린을 내 던져 박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유럽 각지에서 천재성을 과시하던 그는 1917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데뷔연주회를 가졌고, 미국에서의 데뷔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후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은 결국 하이페츠는 그대로 미국에 눌러않게 만들었다. 20대에 이미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그는 1925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1940년에는 비버리힐즈에 평생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의 나이 19세되던 1920년, 런던 데뷔 무대를 본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가 그에게 편지를 보내 '제발 잠들기 전, 기도 대신 아무 곡이나 서툴게 연주해라. 인간으로 태어나 그렇게 신처럼 완벽하게 연주하다간 자칫 하느님의 시기로 요절할지도 모른다'고 충고 아닌 충고를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그의 존재 이후 그동안 '19세기의 것'이던 연주 스타일은 '20세기의 것'으로 변했버렸다. 즉 하이페츠에 의해 바이올린 해석의 '20세기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많은 연주자들이 그의 스타일을 추종하였다. 이로 인해 하이페츠보다 나이에서 한 세대 앞서 전성기의 나이를 맞은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 빛을 잃고 일찍 무대를 떠나 교육자로 전환한 경우도 많았다.

 사진이나 비디오로 남아있는 하이페츠의 연주 모습을 보면 매우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꼿꼿이 선채로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고 거의 무표정한 상태을 끝까지 유지하며 연주에 몰입한다. 그래서인지 하이페츠의 연주는 '차갑다', '메마르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RCA레코드사의 찰스 오코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의 정교한 손놀림 때문일 것이고, 또 누군가가 하이페츠를 가리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이페츠가 언제나 음악에 대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본능과 같은 분석력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래도 또 누군가가 그를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렇다, 그는 차가운 사람이다" 라고 말해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처럼 자신의 감정을 탁월하게 조절하는 음악가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이페츠의 활잡는 방식은 활을 팔목 상부에 놓고 집게 손가락의 누름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아우어 교수의 방식이었다. 몸에서 떨어진 좌우 팔꿈치가 현에 강한 압력을 더해 주었다.(러시아악파 이전의 활주법은 집게 손가락의 누름을 강조하지 않았고, 오른팔꿈치도 높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요아힘의 계보를 잇는 독일악파의 경우는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이기도 했다.) 거기에다 팔목과 팔을 움직여 내는 빠른 비브라토가 더해져 강렬한 빛을 발했다. 이같은 연주법상의 개성과 함께 하이페츠는 극도의 집중력과 대담함, 가까이 하기 힘든 위엄, 완벽한 콘트롤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그의 소리는 힘이 넘쳤고 당시의 바이올린계에 따라다니던 애수어린 감상적인 소리를 제거해 버렸다.
 하이페츠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의 연주가 너무 빠른 나머지 편하게 감상하기엔 어렵다는 것과 그의 음색이나 비브라토 등이 너무나 격렬해서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의 연주는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보다 1.5배 정도 빠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단순히 허겁지겁 '빨리 켜는 것'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하이페츠는 그 놀라운 속도에서도 정확한 음정과 발군의 활 제어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왼손의 컨트롤로 인해 사실상 그 패시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하는 모든 것'을 다 해내고 있다. 그의 음악에서 느끼는 강렬함은 바로 손가락의 마디를 사용한 비브라토와 톡특한 러시아스타일의 활기법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스턴, 그리고 펄만 같은 대가들이 왜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하이페츠 연주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고 하는지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펄만이 브루흐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과 <스코틀랜드환상곡>을 녹음하기 전, 기자가 왜 당신은 브루흐의 바이올린 작품을 녹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 곡은 이미 하이페츠에 의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녹음이 있기에 하지 않고 있다는 대답은 하이페츠가 20세 중반 이후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미친 영향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하이페츠는 솔리스트로서의 활동 외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루빈스타인, 역시 최고의 첼리스트였던 포이어만과 더불어 이른바 '백만불짜리 트리오'를 결성하여 실내악 연주활동도 하였다. 이 트리오는 1942년 포이어만이 사망한 후에도 피아티고르스키를 영입하여 수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나 명성과는 달리 이 트리오의 연주는 그다지 깊은 조화를 들려주지 못하였는데, 루빈스타인의 말을 인용하면 "순전히 하이페츠의 음색과 고집 때문"이었다고 한다.

 셰링(Henryk Szeryng, 1918-1988, 폴란드), 골드베르크(Szymon Goldberg, 1909-1993, 폴란드), 로스탈(Max Rostal, 1905-1991, 오스트리아), 모리니(Erica Morini, 1904-1995, 오스트리아) 등의 스승으로,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했던 20세기의 명교수 칼 플레쉬(Carl Flesch, 1873-1944, 헝가리) 마저도 "역사적으로 절대 완벽한 연주자는 아직 없었다. 그래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하이페츠가 유일한 예다."라는 말은 하이페츠의 연주를 평가하는 결정적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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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바이올린의 양대산맥을 꼽으라면, 하이폐츠와 오이스트라흐를 선택하는데 이견을 없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는 개성있는 명인들이 활동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반까지 하이페츠와 함께 자신만의 바이올린 제국을 구축한 인물이다. 연주스타일에 있어서도 하이페츠와 함께 후배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20세기 초기 하이페츠의 등장으로 당대의 명인들이 무대의 뒤로 사라지게 되었다. 하이페츠의 등장은 새로운 바이올린 세계의 구축을 의미하였다. 곧 하이페츠와 동 시대에 살아 그의 연주를 실황으로 들어야 했던 연주자들에게는 정말 불운했던 시기라고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 역시 그 빛을 잃지 않고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연주자를 꼽으라면, 그가 바로 오이스트라흐이다.

오이스트라흐는 1908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오데사 태생으로, 오데사는 밀스타인 등도 그곳 태생이어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바이올리니스트의 명당인 셈이다. 어린 시절 오데사 음악원의 명교수 스톨랴스키에게 배운 그는 하이페츠로 대표되는 아우어악파와는 다른 러시아 바이올린 인맥을 형성했다. 러시아 연주 양식에는 화려한 기교와 깊이 파고드는 정서의 표현을 그 특징으로 하는 유명한 '아우어파'라는 전통이 있는데, 그의 스승인 스톨랴스키도 그 흐름을 탄 사람이어서 오이스트라흐도 아우어파의 전통을 가진 연주자이지만 그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네오 아우어파Neo-Auer'라고 불린다.  

1935년 지네트 느뵈 다음으로 비에니아프스키 콩쿨에서 2위를 차지하고, 1937년 브뤼셀에서 열린 제1회 이자이콩쿠르(현재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29세의 나이로 우승하여 전 유럽에 명성을 드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나, 2년후 발발한 세계대전 대문에 1945년까지 동구와 소련에 국한된 활동을 했다. 그는 피아노의 길렐스의 경우와 비슷하게 구소련이 정책적으로 서구에 소개하는 연주가로 지목되어 많은 혜택을 누렸다. 피아노의 오보린, 첼로의 로스트로포비치와의 실내악 활동도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하이페츠가 차갑고 냉정한 연주라는 평가에 비해,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인간미 넘치는, 그리고 깊이 몰입해 갈 수 있는 연주라는 평을 듣는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표현이 풍성하고 여유로 왔으며, 하이페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그 선율이 서정적이었다.

하이페츠가 주는 카리스마 때문에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에 버금가지만 2인자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물론 그런 평가가 연주해석과 스타일에 대한 편협한 평가이지만, 애호가들은 순위를 매기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사실 하이페츠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의 비교 대상이었고, 그와 필적할만한 연주자들은 비교 평가되었다. 오이스트라흐외에 대표적인 비교 인물로 밀스타인을 들 수 있다.  
  


오이스트라의 음반들은 대개 정상의 연주로 평가받는다. 그 레퍼토리의 명음반을 2-3개 선택한다면 대다수의 오이스트라흐의 음반은 이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애호가들이 즐기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클뢰탕스-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EMI),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CBS), 브람스 협주곡(클렘페러-프랑스 국립방송 교향악단), 멘델스죤협주곡(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CBS), 시벨리우스협주곡(오먼디-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BS) 등은 대표적인 협주곡 음반이다. 특히 피아노의 오보린과 녹음한 베토벤 바이올린 소타나 전집은 불후의 명반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음반은 녹음에 따라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방세계의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음반사와 작업한 것이며(이것이 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 녹음된 음반들이다. 특히 러시아에서 녹음된 음반들은 러시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된 실황이 꽤 들어 있어, 러시아 레퍼토리에서는 러시아적인 음악해석과 생생한 현장감을 맛볼 수 있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는 내면적이고 깊은 사색과 절제미가 돋보이며, 폭 넓은 레가토를 적절히 구사한다. 그의 기교는 결코 현란한 바이올린 테크닉을 추구하지 않고 조형력, 톤, 힘의 세 요소가 균형을 갖춘 것이다. 또 아름답고 뉘앙스가 풍부한 소리에 낭만적이지만 절제된 맛이 있는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 따뜻한 마음을 넉넉히 나누어 줄줄 아는 그런 연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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