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명기(名器)는 모든 현악기 연주자의 꿈이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한껏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대당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는 바이올린과 첼로는 누가 어떻게 만든 악기일까. 명기들은 과연 어떤 소리를 낼까.

지난 여름 집중호우 때 서울의 한 오케스트라 사무실이 침수되는 바람에 대당 수천만원씩 하는 바이올린 등 고가의 현악기들이 물에 잠겨 큰 피해를 봤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현악기가 그렇게 비싸다는 데 놀랐고, 또 한편으론 그런 값비싼 악기들을 못 쓰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악기 주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악기들은 그리 비싼 축에 들지 않는다. 정말 희귀한 명기(名器)라면 연주자들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지, 빈 사무실에 놓아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악기는 물에 잠긴다고 해서 다시 못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현악기를 다루는 모든 연주자들의 꿈은 최고의 악기를 소유하는 것. 그러나 명기의 가격은 최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물론 진품일 경우).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 등 영국과 미국의 유명 경매장에서는 매년 2∼3차례씩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현존하는 세기의 명기들이 거래된다. 최근에는 타리시오라는 업체가 인터넷을 통한 악기 경매를 실시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비싼 악기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명기라 해도 나이 어린 초보 연주자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세계적인 명기를 소유, 연주자들에게 대여해주는 여러 기관들은 연주자의 실력을 확신할 수 없으면 절대로 악기를 빌려주지 않는다. 아무리 명기라도 실력없는 연주자가 6개월만 잘못 다루면 악기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좋은 악기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은 현악기 연주자들의 경우에 특히 강하다. 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악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천재라 하더라도 그에 필적하는 좋은 악기를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아무리 좋은 악기, 비싼 악기를 가졌다 해도 그에 걸맞은 재능이 없는 연주자라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에 지나지 않는다.

올드 명기는 국가적 자산

대개 현악기는 400년 동안 진화하고 400년 동안 퇴화한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악기들은 300∼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악기는 수리를 위해 모든 부분을 분해할 수도 있고, 일부분을 교체하기도 한다. 그래서 300∼400년 전부터 전해온 악기 중에 원래의 재료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악기는 드물다.

악기를 분해할 때는 물에 담가야 한다. 현악기는 각 부분을 조각조각 접착제로 붙여 만들었는데,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수용성 접착제를 사용한다(수용성 접착제는 접착력도 강하다). 따라서 악기가 침수됐다고 해서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기를 한번 분해한 후에는 사람이 큰 수술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약 1년 동안은 제 소리를 찾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전 잡지 표지 촬영을 할 때의 일이다. 그 달 표지의 주인공은 명기 중의 명기로 불리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한 스태프가 실수로 악기 앞면 중간 부분에 약간의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건 초대형 사건이다)’이 발생했다. 스튜디오에 있던 전 스태프는 물론, 그 악기의 소유자인 연주자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연주자는 밝은 전등 아래서 악기를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필자와 스태프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악기에는 1m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악기를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악기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는 연주자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연주자는 크게 상심했고 촬영도 중단됐다.

“겨우 그 정도를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현악기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자신의 몸만큼, 아니 어쩌면 몸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또한 현악기는 워낙 예민해서 작은 부분에 조금만 부조화가 생겨도 음색이 변하고 악기의 가치가 결정적으로 떨어진다.

위에서 ‘사건의 피해자’로 언급한 악기는 시가가 2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악기 표면에 티끌만한 생채기 하나만 생겨도 악기의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서는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회가 끝나자 마자 연주자의 부모가 무대 뒤로 달려가 연주자보다 악기를 먼저 챙겨 ‘모시고’ 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값비싼 악기를 소유하려는 것을 사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연주자가 100년 이상 된 올드 현악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가적 자산이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나 프랑스가 빼앗아간 소중한 고문화재들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생각해보라.

일본은 1960년대 이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에 퍼져 있는 올드 명기를 하나하나 사들여 지금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기를 소유한 나라가 됐다. 많은 일본 연주자들은 이런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를 무대로 자신감 넘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최고급 명기들 가운데 진품이 확실한 악기는 아시아 지역의 경우 우리나라에 3대, 대만에 18대, 일본에 100대 정도가 있다고 한다. 1999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사망한 후 실시된 그의 유품 경매에서 1742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드 윌튼’이 400만∼500만달러(약 52억∼65억원)에 매매가 이뤄져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경우이며, 1998년 가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악기는 1698년작 ‘스트라디바리 요하임 코르차크’로 52만9500파운드(약 10억6000만원)였다. 전문 연주자들을 위한 세계적인 악기시장에서는 4만∼15만 달러짜리가 중·저가대 악기이고, 고가 악기의 가격은 이보다 10배, 혹은 100배 이상 비싸다.

크레모나, 명기의 본고장

아마티, 가스파로 다 살로,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프란체스코 루제리, 과다니니, 그란치노, 데스토레, 토노니, 몬타냐나, 테츨러, 갈리아노, 고프릴러, 스타이너…. 이들은 현악기 제작의 명장들로 역사에서 언급되는 이름이며, 현악기 연주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고 싶은 올드 악기의 대표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올드 악기라 하면 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악기들을 일컫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모나(Cremona)를 중심으로 제작된 장인들의 작품은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16세기 초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아마티는 초창기에는 류트와 비올을 제작했으나 후에 바이올린 제작으로 전향, 근대 바이올린의 형태를 확립시켰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바이올린은 아마티의 1566년작 ‘찰스 9세’.

그의 손자인 니콜로 아마티는 기존의 소형 바이올린보다 커 ‘그랜드 아마티’라 불리는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아름답고 독특한 목형(木型)과 천연도료를 사용한 그의 악기는 힘차고 명쾌한 음향으로 유명하다. 니콜로 아마티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뛰어난 제자를 길러낸 것. 오늘날 바이올린 명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 두 제작자가 니콜로 아마티의 공방에서 일을 배운 그의 제자들이다.

바이올린의 표준형을 제시한 스트라디바리가(家)의 창시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1660년대 초에 니콜로 아마티의 문하에 들어가 바이올린 제작기술을 배우고 1665년경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차렸다. 그는 93세까지 장수하면서 70여 년에 걸쳐 바이올린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두 아들에게 제작기술을 물려줬다.

스트라디바리의 제작경향은 세 시기에 걸쳐 변화를 겪었다. 1기(1665∼1685)에는 아마티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소형 바이올린을 제작하던 시기인데, 이때 제작된 악기에는 레이블에 ‘아마티의 제자’란 문구를 써 넣었다고 한다. 2기(1685∼1700)는 실험기로, 그는 많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만들면서 악기 형태를 길게 만들어(일명 ‘롱 패턴 스트라드’) 강렬한 울림을 내려 했다. 이는 그전까지 성악가들의 반주를 맡는 데 그쳤던 바이올린이 그 무렵부터 독주 악기로서 두각을 나타낸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700년 이후의 3기는 독자적인 현악기를 개발, 완성한 시기다. 악기의 크기는 2기 때 만든 것보다 약간 작아졌으나 폭이 넓어 비례 면에서 완벽했고, 곡선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했다. 또한 최상급 천연도료를 이중으로 칠해 무게 있는 광택을 냈다.

스승 아마티의 악기가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시적인 음향을 냈다면 스트라디바리의 것은 전 음역에 걸쳐 균형이 잘 잡히고 더욱 힘있는 음량과 정열적이고도 예리한 음색을 겸비했다. 그는 일생 동안 1100∼1200대의 악기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악기는 바이올린 540여 대, 비올라 12대, 첼로 50여 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디바리는 고전시대 바이올린 제작자 가운데 유일하게 제작도구와 제작본, 모형틀을 남기기도 했다.

스트라디바리에 비견되는 또 한 사람의 명장은 과르니에리다. 과르니에리 가문에는 아마티의 제자로 가문의 시조인 안드레아 과르니에리에 이어 그의 둘째아들 지우제페 지오반니 바티스타 과르니에리(‘필리우스 안드레아’라고도 불린다)가 가업을 이었다.

필리우스 안드레아의 둘째아들이며 시조 과르니에리의 손자인 바르톨로메오 지우제페 과르니에리는 ‘델 제수’란 별명을 가진 가장 유명한 과르니에리 제작자이다. ‘델 제수’는 ‘예수’란 뜻으로, 델 제수는 레이블에 십자가와 함께 ‘IHS’라는 표식을 넣었는데, 이는 당시 교인들이 사용하던 약자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의미다.

델 제수는 아름다운 음색을 살려내는 자신의 독특한 악기 형태를 개발해 여기에다 울림이 좋은 스트라디바리의 장점을 결합했다고 평가받는다. 초기의 델 제수 악기들은 크기가 대부분 스트라디바리보다 작다. 그러나 1741년부터 1743년 사이에 제작된 악기들은 풀 사이즈의 그랜드 스트라디바리와 크기가 비슷해진다.

델 제수는 놀랍게도 하나의 모형틀을 사용해 많은 악기를 만들었으며, 음색을 변화시키기 위해 옆판의 높이를 높게 만들고 아칭(악기를 옆으로 봤을 때 앞뒤판의 곡선)을 풍만하게 했다. 현존하는 델 제수는 약 150대로 추산되지만 전문가들은 이중 100∼120대가 진품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고한 귀족’과 ‘겸손한 농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는 외형과 음색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연주자들은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개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태인 연주자들의 대부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은 그 차이를 이렇듯 극명하게 비유했다.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과르니에리는 강간해야 한다.”

일반인이 두 악기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뒤판을 보면 스트라디바리는 한 조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과르니에리의 경우 두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또한 악기의 내부를 보면 스트라디바리는 섬세하게 조각되고 다듬어진 반면 과르니에리는 거칠게 손질돼 끌 자국이나 미처 다 다듬지 않은 듯한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외형은 음색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명연주자들은 초기에는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하다 말년에 가서는 과르니에리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두 악기의 차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스트라디바리는 여성적, 과르니에리는 남성적’이라는 것. 얼마전까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를 함께 사용하다 최근에는 과르니에리만 고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나 얼마나 소중하고 탐나는 악기인가. 그 정도의 악기라면 소리를 끌어내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는 아무리 슬퍼도 너무 고고해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니에리는 울고 싶을 때 땅바닥에 탁 퍼져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하고 겸손한 농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과르니에리로 자주 연주한다. 인생의 맛이 묻어 있다고나 할까….”

동아 국제콩쿠르 우승,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3위, 쿠세비츠키 콩쿠르 2위, 파가니니 콩쿠르 3위 등 화려한 입상경력을 갖고 있고 최근에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롱-티보 콩쿠르에서 결선에 진출한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스트라디바리는 악기가 이미 갖고 있는 완벽한 음색에 나를 맞춰가야 하지만, 과르니에리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 과르니에리는 성장(盛裝)했으되 편안하게 느껴지는 옷과도 같다.”

올해 탄생 100주기를 맞는 20세기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도 처음으로 사용한 명기는 1734년작 스트라디바리였으나 최후까지 사용한 바이올린은 ‘과르니에리 델 제수 다비트’였다(이 바이올린의 첫 소유주는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트다). 이 악기는 1922년에 3만달러를 주고 산 것인데, 그의 사후 유언에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박물관에 기증됐다. 그의 유언장에는 “이 바이올린은 특별한 경우에 그만한 가치를 지닌 연주자가 연주해야 된다”고 쓰여 있다.

‘악마의 혼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죽는 날까지 사용했던 ‘과르니에리 델 제수 캐논’은 “영구히 제노바시(市)에 바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현재 제노바의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에게 부상으로 이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최고의 스트라디바리로 치는 1716년작 ‘스트라디바리 메시아’는 영국의 애시몰리안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모든 연주자들이 과르니에리를 선호한 것은 아니다. 과르니에리는 워낙 유명한 술꾼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악기의 질도 천차만별이라는 게 많은 연주자와 제작자, 악기 딜러들의 얘기다. 20세기의 거장들 중 과르니에리를 좋아한 연주자로는 아르튀르 그리뮈오, 야샤 하이페츠, 레오니트 코간, 루지에로 리치, 아이작 스턴, 핑커스 주커만 등이 있으며,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한 연주자로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예후디 메뉴인, 나탄 밀스타인, 초량 린, 이츠하크 펄먼, 기돈 크레메르 등이 있다.

한편 첼리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보다 먼저 제작된 베니스학파 악기들을 선호한다. 마테오 고프릴러나 그의 제자인 도메니코 몬타냐나의 악기가 그것인데, 악기가 커서 연주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만큼 깊이 있고 중량감 있는 음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에 두고 내린 52억짜리 첼로

영국의 유명한 악기 딜러 찰스 비어에 따르면 헨릭 셰링이나 루지에로 리치가 활동하던 때만 해도 많은 연주자들이 서너 대씩의 악기를 갖고 있었을 만큼 악기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투기꾼 성향의 악기 경매상들이 가격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서 악기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간 연주자의 급여가 30배 정도 오른 데 비해 악기 가격은 100∼150배나 뛰었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악기는 1700년경에 제작된 ‘몬타냐나’인데, 그가 1995년 내한 공연 당시 밝힌 악기 가격은 24억원이었다. 지난 5월 영국의 첼리스트 린 하렐이 택시 트렁크에 두고 내린 1673년작 스트라디바리는 10년 전에 집을 팔아 구입한 400만달러(약 52억원)짜리 악기다.

그렇다면 국내 연주자들은 어떤 악기를 갖고 있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를 사용하다 현재는 1734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데’로 연주하며, 그의 언니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20년 전 스승의 소개로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1731년작 ‘스트라디바리 브라가’로 연주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과르니에리를 사용하다 현재는 1716년작 ‘스트라디바리 세솔’을 연주하며, 첼리스트 조영창은 1669년작 ‘안드레아 과르니에리’를 갖고 있다. 핀란드 국립음대에 재직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은 1785년작 ‘스토리오니’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은 1669년작 ‘루지에리’를 연주하는데, 그녀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미국의 할머니 독지가가 선물한 것이다.

재불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사용하는 악기는 한때 파가니니가 사용했다는 1727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이 악기는 과르니에리가 직접 바른 도료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악기는 1988년 그가 카를 플레슈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다음 해 2월에 가질 영국 데뷔 무대를 앞두고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

양성식의 동생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6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악기점에서 구입한 1697년작 ‘지오반니 그란치노’를 사용한다. 미국의 4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김은 1700년작 ‘조셉 필리우스 안드레아 과르니에리’를 사용하고 있다.

해외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한국 연주자들로부터 가끔 볼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조국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유의 투정이다. 일본 미국 영국 등의 경우처럼 재능이 뛰어난 자국 연주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의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가령 일본의 도쿄 현악4중주단은 일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스트라디바리 콰르텟(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모두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악기로 한때 파가니니가 모두 소유했다고 한다)을 빌려 쓰고 있으며, 소니 레이블에 소속된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시 가지모토도 1722년작 ‘스트라디바리 주피터’를 빌려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악기상인 바인 앤 푸시사(社)는 ‘스트라디바리협회’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협회는 1985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세계의 명기를 수집가인 소유주들로부터 빌려 연주자들과 연결시켜주고 있다. 장영주, 김지연, 이유라, 김수빈, 제니퍼 고, 권윤경 등을 비롯해 미도리, 막심 벤겔로프, 길 샤함, 바딤 레핀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이 혜택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다. 이 연주자들은 악기를 빌려쓰는 대신 1년에 두 차례 후원자들을 위한 연주에 출연해야 하며, 악기의 보험금은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매년 날짜를 정해 악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진품 무색케 하는 복제품

우리나라에서도 삼성문화재단과 금호문화재단이 이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1997년 바인 앤 푸시 사에서 명기를 구입한 후 악기은행을 설립해 한 사람당 1년씩 사용하는 조건으로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삼성 악기은행이 보유한 바이올린은 1725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엑스 모럴’과 1708년작 ‘스트라디바리 엑스 도리스 슈트라우스’, 비올라는 1590년경에 제작된 ‘가스파로 다 살로’, 첼로는 1725년경에 만들어진 ‘고프릴러’, 콘트라베이스는 ‘루이지 만토바니’이다. 연주회가 있을 때 단기 대여를 하기도 하는데, 1999년 8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내한해 순회 연주회를 할 때 과르니에리를, 바이올리니스트 트리샤 박이 스트라디바리를 빌려 연주하기도 했다.

금호문화재단은 좀더 자유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연주자가 원하면 연주 활동을 지속하는 한 사실상 영구 임대해 주는데, 연주자의 활동과 기량에 따라 더 좋은 악기로 바꿔주기도 한다. 1993년부터 악기은행을 운영해온 금호문화재단은 모두 14대의 악기를 보유하고 있다. 주로 금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영재콘서트를 통해 수혜자를 발굴하는데, 첼리스트 이유홍·이정란·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권혁주·레이첼 리·줄리엣 강·리비아 손·조가현 등 젊은 연주자 10여 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현재 1774년작 ‘과다니니’가 리비아 손에게, 1600년작 ‘마기니’ 첼로가 이유홍에게 대여중이다.

19세기 프랑스에 뷔욤이라는 악기 제작자가 있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수많은 명기들을 복제한 카피스트였다. 파가니니가 수리를 위해 맡긴 명기를 하루 만에 복제해낼 만큼 기술이 뛰어났는데, 그의 카피 악기는 진품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우수해 지금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복제 악기에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은 대만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가 잠시 미국에 있을 때 일본계 미국인 제작자인 테츠오 마츠다가 장난 삼아 이 악기를 카피해 주인에게 보여줬더니 주인은 대수롭지도 않게 “악기에 왜 이렇게 광을 냈어?” 하고 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미국 연주 여행중 리허설을 할 때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그의 델 제수를 카피한 악기와 슬쩍 바꿔놨다고 한다. 그러나 연주회를 끝낸 아카르도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역시 델 제수가 최고야”라며 찬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요즘 제작되는 악기는 대부분 이렇듯 예전의 명기를 복제한 것이다. 이는 잘 보존된 명기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악기는 어느 한 사람의 소유겠지만,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색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명기는 이제 한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93세까지 장수한 스트라디바리의 일생이 우리에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토록 장수하지 않았다면 명기의 숫자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기는 명연주자를 만나야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비록 수억원을 호가하는 명기가 아니어도 연주실력이 출중하다면 명기의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명품은 명인들에 의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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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일자 13일 영국 런던에서 1740년대의 바이올린이 모든 악기를 통틀어, 경매 사상 최고가에 팔렸다고 해외 언론들이 보도했다.

소더비가 주관한 경매에서 팔린 화제의 바이올린은 명장 주세페 과르네리가 만든 것으로, 지난 70년간 공개적 연주에 사용된 바 없는 명품. 바이올린을 구입한 사람은 러시아의 음악가이자 변호사인 막심 빅토로프(35세).

경매 기록을 깬 바이올린의 정확한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2006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팔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격 354만 달러(약 33억 원)를 훨씬 넘는 수준이라는 게 경매 회사의 설명이다.

주세페 과르네리 (1698-1745)는 바이올린 제작의 명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의 유일한 라이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소더비는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막심 빅토로프에게 넘기기 전에 공개 연주의 자리를 마련했다.

고가의 바이올린 컬렉션을 갖추고 있는 빅토로프는 “바이올린은 인간 행위가 낳은 극치이며 과르네리는 천재이자 위대한 명장이므로, 이 바이올린은 두 배로 완벽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기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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