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의 연주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테크닉이 비브라토이다. 


바이올린으로 비브라토를 잘하기 위한 연습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훌륭한 비브라토를 구사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가 있는데, 첫째는 비


브라토의 주기의 일정한 속도(진동수) 이고 두번째는 적절한 진폭이다.


듣기 좋은 비브라토는 비브라토의 진동수가 매우 고르고 일정한 반면, 서투른 비브라토는 비브


라토의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하기 때문에 조악한 느낌을 주기 쉽다. 


또한 비브라토의 폭또한 중요한데, 지나치게 진폭이 크고 느리면 긴장감이 너무 떨어지고, 반


대로 폭이 너무 좁고 빠르면 풍성한 울림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악한 느낌을 주기 쉽다. 


안정된 비브라토를 구사하기 위한 핵심 요소는 바로 '왼손가락의 가장 끝마디 관절의 유연


성'이다. 


현과 접촉하는 손가락 제일 끝부분의 첫째 마디 관절이 접혔다가 펴지는 과정이 원활하고 뚜렷


하게 이루어져야만 규칙적이고 뚜렷한 비브라토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정작 이 마디 관절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으면, 팔과 손에 힘만 들어갈 뿐 거의 비브라토의 진동


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브라토를 연습할 때 이 가장 마디막 관절에 힘을 빼고, 이 마지막 관절이 유연하게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하는데 역점을 두고 연습을 하면 훌륭한 비브라토를 구사할 수 있다.   


비브라토를 연습하는 핵심적인 팁은, 비브라토의 속도를 일정하고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아주 느린 박자로 온활 하나를 천천히 켤 때 비브라토가 4번 들


어가도록 하여 연습하다가, 


점차 속도를 늘려 8번, 16번, 32번 이런 식으로 늘려서 연습하도록 한다. 


반드시 속도와 진폭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연습을 들여야 질좋은 비브라토를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티커스텀 수제 바이... 토마스틱 인펠드 도... 리벤젤러 골드 송진... 미텐바흐 바이올린 ... [쿤현악기어깨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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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드 명기(名器)는 모든 현악기 연주자의 꿈이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한껏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대당 수억,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는 바이올린과 첼로는 누가 어떻게 만든 악기일까. 명기들은 과연 어떤 소리를 낼까.

지난 여름 집중호우 때 서울의 한 오케스트라 사무실이 침수되는 바람에 대당 수천만원씩 하는 바이올린 등 고가의 현악기들이 물에 잠겨 큰 피해를 봤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은 한편으로 현악기가 그렇게 비싸다는 데 놀랐고, 또 한편으론 그런 값비싼 악기들을 못 쓰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악기 주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악기들은 그리 비싼 축에 들지 않는다. 정말 희귀한 명기(名器)라면 연주자들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지, 빈 사무실에 놓아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악기는 물에 잠긴다고 해서 다시 못쓰게 되는 것도 아니다.

현악기를 다루는 모든 연주자들의 꿈은 최고의 악기를 소유하는 것. 그러나 명기의 가격은 최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호가한다(물론 진품일 경우).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 등 영국과 미국의 유명 경매장에서는 매년 2∼3차례씩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현존하는 세기의 명기들이 거래된다. 최근에는 타리시오라는 업체가 인터넷을 통한 악기 경매를 실시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비싼 악기를 갖고 있느냐가 아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명기라 해도 나이 어린 초보 연주자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세계적인 명기를 소유, 연주자들에게 대여해주는 여러 기관들은 연주자의 실력을 확신할 수 없으면 절대로 악기를 빌려주지 않는다. 아무리 명기라도 실력없는 연주자가 6개월만 잘못 다루면 악기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좋은 악기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은 현악기 연주자들의 경우에 특히 강하다. 현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은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악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천재라 하더라도 그에 필적하는 좋은 악기를 만나지 못하면 재능을 한껏 발휘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아무리 좋은 악기, 비싼 악기를 가졌다 해도 그에 걸맞은 재능이 없는 연주자라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에 지나지 않는다.

올드 명기는 국가적 자산

대개 현악기는 400년 동안 진화하고 400년 동안 퇴화한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악기들은 300∼4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악기는 수리를 위해 모든 부분을 분해할 수도 있고, 일부분을 교체하기도 한다. 그래서 300∼400년 전부터 전해온 악기 중에 원래의 재료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악기는 드물다.

악기를 분해할 때는 물에 담가야 한다. 현악기는 각 부분을 조각조각 접착제로 붙여 만들었는데,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수용성 접착제를 사용한다(수용성 접착제는 접착력도 강하다). 따라서 악기가 침수됐다고 해서 수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악기를 한번 분해한 후에는 사람이 큰 수술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약 1년 동안은 제 소리를 찾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전 잡지 표지 촬영을 할 때의 일이다. 그 달 표지의 주인공은 명기 중의 명기로 불리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였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 한 스태프가 실수로 악기 앞면 중간 부분에 약간의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건 초대형 사건이다)’이 발생했다. 스튜디오에 있던 전 스태프는 물론, 그 악기의 소유자인 연주자도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연주자는 밝은 전등 아래서 악기를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필자와 스태프들은 가슴을 졸이며 그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악기에는 1m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악기를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악기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는 연주자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연주자는 크게 상심했고 촬영도 중단됐다.

“겨우 그 정도를 갖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현악기 연주자들에게 악기는 자신의 몸만큼, 아니 어쩌면 몸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그들은 자신의 음악성을 발휘하게 해줄 ‘천생연분’의 악기를 만나기 위해 평생을 찾아 헤맨다. 또한 현악기는 워낙 예민해서 작은 부분에 조금만 부조화가 생겨도 음색이 변하고 악기의 가치가 결정적으로 떨어진다.

위에서 ‘사건의 피해자’로 언급한 악기는 시가가 2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악기 표면에 티끌만한 생채기 하나만 생겨도 악기의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에 서는 연주회에 가보면 연주회가 끝나자 마자 연주자의 부모가 무대 뒤로 달려가 연주자보다 악기를 먼저 챙겨 ‘모시고’ 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값비싼 악기를 소유하려는 것을 사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연주자가 100년 이상 된 올드 현악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국가적 자산이자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이나 프랑스가 빼앗아간 소중한 고문화재들을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을 생각해보라.

일본은 1960년대 이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세계에 퍼져 있는 올드 명기를 하나하나 사들여 지금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명기를 소유한 나라가 됐다. 많은 일본 연주자들은 이런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를 무대로 자신감 넘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최고급 명기들 가운데 진품이 확실한 악기는 아시아 지역의 경우 우리나라에 3대, 대만에 18대, 일본에 100대 정도가 있다고 한다. 1999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이 사망한 후 실시된 그의 유품 경매에서 1742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드 윌튼’이 400만∼500만달러(약 52억∼65억원)에 매매가 이뤄져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경우이며, 1998년 가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악기는 1698년작 ‘스트라디바리 요하임 코르차크’로 52만9500파운드(약 10억6000만원)였다. 전문 연주자들을 위한 세계적인 악기시장에서는 4만∼15만 달러짜리가 중·저가대 악기이고, 고가 악기의 가격은 이보다 10배, 혹은 100배 이상 비싸다.

크레모나, 명기의 본고장

아마티, 가스파로 다 살로,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프란체스코 루제리, 과다니니, 그란치노, 데스토레, 토노니, 몬타냐나, 테츨러, 갈리아노, 고프릴러, 스타이너…. 이들은 현악기 제작의 명장들로 역사에서 언급되는 이름이며, 현악기 연주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고 싶은 올드 악기의 대표적인 이름이기도 하다.

올드 악기라 하면 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악기들을 일컫는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모나(Cremona)를 중심으로 제작된 장인들의 작품은 지금까지 세계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다.

16세기 초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안드레아 아마티는 초창기에는 류트와 비올을 제작했으나 후에 바이올린 제작으로 전향, 근대 바이올린의 형태를 확립시켰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바이올린은 아마티의 1566년작 ‘찰스 9세’.

그의 손자인 니콜로 아마티는 기존의 소형 바이올린보다 커 ‘그랜드 아마티’라 불리는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아름답고 독특한 목형(木型)과 천연도료를 사용한 그의 악기는 힘차고 명쾌한 음향으로 유명하다. 니콜로 아마티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뛰어난 제자를 길러낸 것. 오늘날 바이올린 명기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 두 제작자가 니콜로 아마티의 공방에서 일을 배운 그의 제자들이다.

바이올린의 표준형을 제시한 스트라디바리가(家)의 창시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1660년대 초에 니콜로 아마티의 문하에 들어가 바이올린 제작기술을 배우고 1665년경 독립해 자신의 공방을 차렸다. 그는 93세까지 장수하면서 70여 년에 걸쳐 바이올린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두 아들에게 제작기술을 물려줬다.

스트라디바리의 제작경향은 세 시기에 걸쳐 변화를 겪었다. 1기(1665∼1685)에는 아마티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소형 바이올린을 제작하던 시기인데, 이때 제작된 악기에는 레이블에 ‘아마티의 제자’란 문구를 써 넣었다고 한다. 2기(1685∼1700)는 실험기로, 그는 많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만들면서 악기 형태를 길게 만들어(일명 ‘롱 패턴 스트라드’) 강렬한 울림을 내려 했다. 이는 그전까지 성악가들의 반주를 맡는 데 그쳤던 바이올린이 그 무렵부터 독주 악기로서 두각을 나타낸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1700년 이후의 3기는 독자적인 현악기를 개발, 완성한 시기다. 악기의 크기는 2기 때 만든 것보다 약간 작아졌으나 폭이 넓어 비례 면에서 완벽했고, 곡선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발했다. 또한 최상급 천연도료를 이중으로 칠해 무게 있는 광택을 냈다.

스승 아마티의 악기가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시적인 음향을 냈다면 스트라디바리의 것은 전 음역에 걸쳐 균형이 잘 잡히고 더욱 힘있는 음량과 정열적이고도 예리한 음색을 겸비했다. 그는 일생 동안 1100∼1200대의 악기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악기는 바이올린 540여 대, 비올라 12대, 첼로 50여 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라디바리는 고전시대 바이올린 제작자 가운데 유일하게 제작도구와 제작본, 모형틀을 남기기도 했다.

스트라디바리에 비견되는 또 한 사람의 명장은 과르니에리다. 과르니에리 가문에는 아마티의 제자로 가문의 시조인 안드레아 과르니에리에 이어 그의 둘째아들 지우제페 지오반니 바티스타 과르니에리(‘필리우스 안드레아’라고도 불린다)가 가업을 이었다.

필리우스 안드레아의 둘째아들이며 시조 과르니에리의 손자인 바르톨로메오 지우제페 과르니에리는 ‘델 제수’란 별명을 가진 가장 유명한 과르니에리 제작자이다. ‘델 제수’는 ‘예수’란 뜻으로, 델 제수는 레이블에 십자가와 함께 ‘IHS’라는 표식을 넣었는데, 이는 당시 교인들이 사용하던 약자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의미다.

델 제수는 아름다운 음색을 살려내는 자신의 독특한 악기 형태를 개발해 여기에다 울림이 좋은 스트라디바리의 장점을 결합했다고 평가받는다. 초기의 델 제수 악기들은 크기가 대부분 스트라디바리보다 작다. 그러나 1741년부터 1743년 사이에 제작된 악기들은 풀 사이즈의 그랜드 스트라디바리와 크기가 비슷해진다.

델 제수는 놀랍게도 하나의 모형틀을 사용해 많은 악기를 만들었으며, 음색을 변화시키기 위해 옆판의 높이를 높게 만들고 아칭(악기를 옆으로 봤을 때 앞뒤판의 곡선)을 풍만하게 했다. 현존하는 델 제수는 약 150대로 추산되지만 전문가들은 이중 100∼120대가 진품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고한 귀족’과 ‘겸손한 농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는 외형과 음색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연주자들은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개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태인 연주자들의 대부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은 그 차이를 이렇듯 극명하게 비유했다.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과르니에리는 강간해야 한다.”

일반인이 두 악기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뒤판을 보면 스트라디바리는 한 조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과르니에리의 경우 두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또한 악기의 내부를 보면 스트라디바리는 섬세하게 조각되고 다듬어진 반면 과르니에리는 거칠게 손질돼 끌 자국이나 미처 다 다듬지 않은 듯한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외형은 음색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명연주자들은 초기에는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하다 말년에 가서는 과르니에리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두 악기의 차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스트라디바리는 여성적, 과르니에리는 남성적’이라는 것. 얼마전까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를 함께 사용하다 최근에는 과르니에리만 고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나 얼마나 소중하고 탐나는 악기인가. 그 정도의 악기라면 소리를 끌어내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는 아무리 슬퍼도 너무 고고해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니에리는 울고 싶을 때 땅바닥에 탁 퍼져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하고 겸손한 농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과르니에리로 자주 연주한다. 인생의 맛이 묻어 있다고나 할까….”

동아 국제콩쿠르 우승,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3위, 쿠세비츠키 콩쿠르 2위, 파가니니 콩쿠르 3위 등 화려한 입상경력을 갖고 있고 최근에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롱-티보 콩쿠르에서 결선에 진출한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스트라디바리는 악기가 이미 갖고 있는 완벽한 음색에 나를 맞춰가야 하지만, 과르니에리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 과르니에리는 성장(盛裝)했으되 편안하게 느껴지는 옷과도 같다.”

올해 탄생 100주기를 맞는 20세기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도 처음으로 사용한 명기는 1734년작 스트라디바리였으나 최후까지 사용한 바이올린은 ‘과르니에리 델 제수 다비트’였다(이 바이올린의 첫 소유주는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트다). 이 악기는 1922년에 3만달러를 주고 산 것인데, 그의 사후 유언에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박물관에 기증됐다. 그의 유언장에는 “이 바이올린은 특별한 경우에 그만한 가치를 지닌 연주자가 연주해야 된다”고 쓰여 있다.

‘악마의 혼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죽는 날까지 사용했던 ‘과르니에리 델 제수 캐논’은 “영구히 제노바시(市)에 바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현재 제노바의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에게 부상으로 이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최고의 스트라디바리로 치는 1716년작 ‘스트라디바리 메시아’는 영국의 애시몰리안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모든 연주자들이 과르니에리를 선호한 것은 아니다. 과르니에리는 워낙 유명한 술꾼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악기의 질도 천차만별이라는 게 많은 연주자와 제작자, 악기 딜러들의 얘기다. 20세기의 거장들 중 과르니에리를 좋아한 연주자로는 아르튀르 그리뮈오, 야샤 하이페츠, 레오니트 코간, 루지에로 리치, 아이작 스턴, 핑커스 주커만 등이 있으며,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한 연주자로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예후디 메뉴인, 나탄 밀스타인, 초량 린, 이츠하크 펄먼, 기돈 크레메르 등이 있다.

한편 첼리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보다 먼저 제작된 베니스학파 악기들을 선호한다. 마테오 고프릴러나 그의 제자인 도메니코 몬타냐나의 악기가 그것인데, 악기가 커서 연주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만큼 깊이 있고 중량감 있는 음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에 두고 내린 52억짜리 첼로

영국의 유명한 악기 딜러 찰스 비어에 따르면 헨릭 셰링이나 루지에로 리치가 활동하던 때만 해도 많은 연주자들이 서너 대씩의 악기를 갖고 있었을 만큼 악기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투기꾼 성향의 악기 경매상들이 가격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서 악기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간 연주자의 급여가 30배 정도 오른 데 비해 악기 가격은 100∼150배나 뛰었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악기는 1700년경에 제작된 ‘몬타냐나’인데, 그가 1995년 내한 공연 당시 밝힌 악기 가격은 24억원이었다. 지난 5월 영국의 첼리스트 린 하렐이 택시 트렁크에 두고 내린 1673년작 스트라디바리는 10년 전에 집을 팔아 구입한 400만달러(약 52억원)짜리 악기다.

그렇다면 국내 연주자들은 어떤 악기를 갖고 있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를 사용하다 현재는 1734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데’로 연주하며, 그의 언니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20년 전 스승의 소개로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1731년작 ‘스트라디바리 브라가’로 연주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과르니에리를 사용하다 현재는 1716년작 ‘스트라디바리 세솔’을 연주하며, 첼리스트 조영창은 1669년작 ‘안드레아 과르니에리’를 갖고 있다. 핀란드 국립음대에 재직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은 1785년작 ‘스토리오니’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은 1669년작 ‘루지에리’를 연주하는데, 그녀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미국의 할머니 독지가가 선물한 것이다.

재불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사용하는 악기는 한때 파가니니가 사용했다는 1727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이 악기는 과르니에리가 직접 바른 도료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악기는 1988년 그가 카를 플레슈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다음 해 2월에 가질 영국 데뷔 무대를 앞두고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

양성식의 동생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6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악기점에서 구입한 1697년작 ‘지오반니 그란치노’를 사용한다. 미국의 4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김은 1700년작 ‘조셉 필리우스 안드레아 과르니에리’를 사용하고 있다.

해외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한국 연주자들로부터 가끔 볼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조국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유의 투정이다. 일본 미국 영국 등의 경우처럼 재능이 뛰어난 자국 연주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의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가령 일본의 도쿄 현악4중주단은 일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스트라디바리 콰르텟(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모두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악기로 한때 파가니니가 모두 소유했다고 한다)을 빌려 쓰고 있으며, 소니 레이블에 소속된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시 가지모토도 1722년작 ‘스트라디바리 주피터’를 빌려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악기상인 바인 앤 푸시사(社)는 ‘스트라디바리협회’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협회는 1985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세계의 명기를 수집가인 소유주들로부터 빌려 연주자들과 연결시켜주고 있다. 장영주, 김지연, 이유라, 김수빈, 제니퍼 고, 권윤경 등을 비롯해 미도리, 막심 벤겔로프, 길 샤함, 바딤 레핀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이 혜택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다. 이 연주자들은 악기를 빌려쓰는 대신 1년에 두 차례 후원자들을 위한 연주에 출연해야 하며, 악기의 보험금은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매년 날짜를 정해 악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진품 무색케 하는 복제품

우리나라에서도 삼성문화재단과 금호문화재단이 이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1997년 바인 앤 푸시 사에서 명기를 구입한 후 악기은행을 설립해 한 사람당 1년씩 사용하는 조건으로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삼성 악기은행이 보유한 바이올린은 1725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엑스 모럴’과 1708년작 ‘스트라디바리 엑스 도리스 슈트라우스’, 비올라는 1590년경에 제작된 ‘가스파로 다 살로’, 첼로는 1725년경에 만들어진 ‘고프릴러’, 콘트라베이스는 ‘루이지 만토바니’이다. 연주회가 있을 때 단기 대여를 하기도 하는데, 1999년 8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내한해 순회 연주회를 할 때 과르니에리를, 바이올리니스트 트리샤 박이 스트라디바리를 빌려 연주하기도 했다.

금호문화재단은 좀더 자유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연주자가 원하면 연주 활동을 지속하는 한 사실상 영구 임대해 주는데, 연주자의 활동과 기량에 따라 더 좋은 악기로 바꿔주기도 한다. 1993년부터 악기은행을 운영해온 금호문화재단은 모두 14대의 악기를 보유하고 있다. 주로 금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영재콘서트를 통해 수혜자를 발굴하는데, 첼리스트 이유홍·이정란·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권혁주·레이첼 리·줄리엣 강·리비아 손·조가현 등 젊은 연주자 10여 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현재 1774년작 ‘과다니니’가 리비아 손에게, 1600년작 ‘마기니’ 첼로가 이유홍에게 대여중이다.

19세기 프랑스에 뷔욤이라는 악기 제작자가 있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수많은 명기들을 복제한 카피스트였다. 파가니니가 수리를 위해 맡긴 명기를 하루 만에 복제해낼 만큼 기술이 뛰어났는데, 그의 카피 악기는 진품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우수해 지금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복제 악기에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은 대만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가 잠시 미국에 있을 때 일본계 미국인 제작자인 테츠오 마츠다가 장난 삼아 이 악기를 카피해 주인에게 보여줬더니 주인은 대수롭지도 않게 “악기에 왜 이렇게 광을 냈어?” 하고 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미국 연주 여행중 리허설을 할 때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그의 델 제수를 카피한 악기와 슬쩍 바꿔놨다고 한다. 그러나 연주회를 끝낸 아카르도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역시 델 제수가 최고야”라며 찬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요즘 제작되는 악기는 대부분 이렇듯 예전의 명기를 복제한 것이다. 이는 잘 보존된 명기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악기는 어느 한 사람의 소유겠지만,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색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명기는 이제 한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93세까지 장수한 스트라디바리의 일생이 우리에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토록 장수하지 않았다면 명기의 숫자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기는 명연주자를 만나야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비록 수억원을 호가하는 명기가 아니어도 연주실력이 출중하다면 명기의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명품은 명인들에 의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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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바이올린이 연주되던 상황은 귀족의 거실이나 댄스홀이었다. 파가니니의 등장과 함께 바이얼린은 중산층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연주회 무대에 서야 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야외음악회에도 동원되어 보다 강력한 음량과 표현력이 요구되었다. 바이올린이 계속 그 힘을 더해온 사실 때문에 여성적인 악기라는 대명사도 불필요한 것이 될는지도 모른다. 바이올린 줄을 양쪽에서 잡아 당기는 힘 즉 장력이 더 강화되었고 브리지의 높이도 올라갔다. 이러한 여러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바이올린이 탄생된 것이다. 따라서 바이올린의 생일을 정확하게 알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꾸준한 악기 개량과 실험을 통해 서구 합리주의의 음악적 산물이 탄생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올린은 그 볼륨의 크기와 화려함을 계속해서 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바이올린만큼 가격이 천차만별인 악기도 없을 것이다. 스트라디바리, 아마티, 과르네리 등 오늘날에는 거의 재생 불가능한 명기들은 그 골동품적인 가치와 함께 수십억원에 달하는 값이 매겨지고 있다. 바이얼린과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그 맛이 진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그가 세계적인 바이올린 제작자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고 난 다음 그러니까 18세기말부터의 일이다. (그를 다룬 소설이 세광출판사에서 나와 있다.) 니 콜로 아마티를 사사한 그는 100년이 넘도록 노하우가 축적되어 온 크레모나 지방의 바이올린 제작 기술의 전통을 전수받았다.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스트라디바리 또는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리는 그의 바이올린은 현재 약 650점이 남아 있으며,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소장하고 있으면서 지금도 세계 각지의 음악무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1644년에 태어나 1737년에 세상을 떠난 스트라디바리는 거의 70년동안 바이올린 제작에 종사했다. 1666년부터 1680년 사이에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그가 주로 하프, 류트, 만돌린 등의 악기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악기로 바이올린이 가장 많고 첼로와 비올라도 꽤 남아 있다. 바이올린의 명인으로 유명했던 파가니니도 생전에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비올라를 얻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명기를 연주하기 위해 베를리오즈에게 비올라 협주곡을 위촉했는데, 그 결과 나온 것이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해롤드라는 곡이다.
 스트라디바리의 기나긴 생애 중 몇차례의 중요한 변화의 계기를 만나게 된다. 1680년 피사 산타 도메니코로 이사를 간 것과 1698년 스트라디바리의 첫째 부인이 사망하여 이듬해 안토니아 마리아 짐벨리와 결혼해 5명의 아이를 더 나은 것이다. 그의 황금기는 둘째 부인과 결혼해 안정을 되찾아 작업에 몰두한 1700년부터 1720년까지이며 특히 1715년이 제작 기술의 절정에 도달한 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도 1715년산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최고가를 호가하는 명기로 손꼽힌다. 
 그가 만든 바이올린은 명기 과르네리, 아마티 등과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적잖이 많은 수량이 남아있는 편이다. 그래서 이름을 구분해 주기 위해 그동안 소장했던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거나 악기 특유의 음색과 특징을 사람이름에 빗대어 별명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보통이다. 1694년의 베츠, 1715년의 알라드, 1716년산 메시아가 그 대표적인 예다. 베츠는 베츠라는 악기상인이 불과 1파운드에 구입한 악기로 현재 미국 워싱턴 국회도서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알라드는 전문가들이 현존하는 최고의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으로 평가하고 있는 명기 중의 명기. 메시아는 스트라디바리가 죽은 다음 그의 가문에 오랜동안 남아있던 것으로 악기상 타리시오에게 완벽한 상태로 넘어갔다가 다음 구매자인 비욤이 약간 변형시켰다. 그러나 현존하는 스트라디바리 중 원형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바이올린은 현재 옥스포드의 아시몰리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바이올린을 소장하면서 연주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로는 피에르 아모얄(1717년 코찬스키), 알프레도 캄폴리(1700년 드라고네티), 지노 프란체스스카디(1727년 하트), 아르투르 그뤼미요(1727년 거인), 야사 하이페츠(1731년), 프리츠 크라이슬러(1734년), 기돈 크레머(1734년), 예후디 메뉴인(1714년 소일), 이차크 펄만, 헨릭 셰링, 요제프 수크 등이 있다.
 자크 티보가 베리오에게 물려받아 소장하고 있던 1709년산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은 교통사고로 티보와 함께 운명을 달리 했다. 한편 유진 이자이에게는 아이작 스턴에게 물려준 과르네리 말고도, 1732년 제작의 스트라디바리 헤라클레스가 있었는데, 1909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도난당한 이후 영영 못찾고 있다.
 스트라디바리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영원한 명기로 남아있는 것은 그 제작기술이 신비에 싸인채 전수되지 않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스트라디바리를 오늘날 재현하려는 노력은 많았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 현악기 최고의 명품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의 비밀은 나무좀벌레를 막아주는 특수 약품 처리에 있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과학 전문지 네이처를 인용,30일 보도했다.
미국 텍사스A&M대학 조지프 나지바리 박사 연구팀은 스트라디바리가 1717년에 제작한 바이올린과 첼로,과르네리 델 제수가 1741년에 만든 바이올린 등을 적외선 분광기와 핵자기공명장치를 이용해 분석했다. 실제 분석에는 수리를 위해 맡겨진 악기들의 부스러기가 사용됐다. 나자바리 교수는 “당시 악기 제작에 사용된 목재들은 산화 광물질이 포함된 액체에 삶겨진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는 좀벌레를 죽이고 곰팡이의 성장을 막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처리로 인해 스트라디바리가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색을 갖게 됐으며 저음에서도 귀에 거슬리는 껄끄러운 소리를 막을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나지바리 교수는 “산화 광물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연구를 위해 악기의 목재 샘플이 필요하지만 악기 주인들이 내주기를 꺼리고 있다”며 “음색의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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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연주에 있어서 빠르고 정확하게 음정을 짚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소리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보잉이지만, 정확하고 민첩한 음정 처리는 보잉에 우선한다. 제 아무리 부드럽고 유연한 보잉으로 소리를 만들어낸다한들 음정이 안 맞고 손가락이 보잉을 따라가지 못하면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는 빠르고 정확한 핑거링을 위한 몇가지 팁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사실 이 내용들은 일반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검증된 것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 있지는 않은 것이라서 이대로 따라한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굉장히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이런 점들에 유념을 해서 연습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연습하는 것은 나중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1. 느리게 연습하기
 세계적인 바이올린 교수 Ivan Galamian에게 수많은 연습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것 하나만 추천한다면 어떤 방법을 추천하겠느나는 질문에 그는 '느리게 연습하기'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이 방법은 동네 바이올린 학원 선생님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는 방법이고, 실제로도 가장 완벽하고 효과적인 연습 방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실행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왜냐? 지겹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빠르고 정확한 연주를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느리고 천천히 연습을 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자신이 편안하게 콘트롤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천천히 연습을 계속하다보면, 어느새 빨리 켜도 흔들리지 않고 편안해지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천천히 연습을 함으로써 빠르게 연주할 때어렵고 꼬이는 부분을 꼬이지 않게 연주를 할 수 있고,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 이 어려운 패시지를 몸에 익혀 빠르게 연주해도 무리없이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메트로놈으로 속도 올리기
 느리게 연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메트로놈을 이용하여 정확한 리듬 감각을 익히고, 고른 속도를 내는 것이다. 일류 연주자와 그저그런 연주자의 차이 중 하나는 일류 연주자는 기계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계적인 연주란 빠른 패시지에도 흔들리지 않고 정확하고 고른 리듬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기계적인 리듬감을 갖춤으로서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속도와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조금 실력이 딸리는 연주자들을 보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약간 리듬이 빠른 부분이나 처리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템포가 흔들리고, 이를 마치 음악적인 표현인양 루바토를 쓰는 것처럼 가장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테크닉의 한계를 음악적 표현인 것처럼 가장하고 넘어가지만, 오히려 이런 연주보다는 밋밋하더라도 기계적이고 정확한 연주가 더 깔끔하고 음악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메트로놈을 이용해서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일단 모든 패시지를 가장 편하고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는 느린 템포로 시작을 해서, 서서히 속도를 올려나가면 된다. 올라간 각 템포에서도 물론 모든 패시지를 가장 편하고 깔끔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 하에서 말이다.

3. 손가락을 낮추기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해서 현을 짚을 때 손가락에 힘을 주어 꼭꼭 누르거나 손가락을 현 위로 높이 올렸다가 짚는 경우가 있다. 느린 패시지든 빠른 패시지건 어떤 패시지건 간에, 현을 짚는 손가락의 위치는 현 위에서 최대한 낮을 수록 좋다. 음정을 짚을 때 손가락을 현 위로 높게 들었다 짚고 다시 뗄 때도 높이 들면서 뗀다면, 음을 짚을 때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현을 짚을 떼도 무의식적으로 지판을 눌러서 짚기 때문에 손가락을 민첩하게 움직이기가 힘들어진다. 손가락을 현에 거의 닿을 듯한 위치에 두고 음정을 짚고 뗄때도 낮은 위치로 둔다면, 빠른 음정을 짚을 때도 여유있게 짚을 수 있고, 현을 짚을 때 불필요하게 세게 누르게 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안정감 있는 연주를 할 수 있다. 만일 이런 나쁜 습관이 있다면 이 방법으로 고치면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4. 음표를 그룹으로 연주하기
 빠른 스케일을 연주할 때 음표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은 음표를 연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리듬이 흐트러지거나 꼬이기 쉽다. 이 때에는 음표들을  3개나 4개, 혹은 6개, 8개 등의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이 그룹 덩어리를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하게 연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선에서부터 시작하는 상행스케일을 연주한다고 가정하면, 솔라시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라..이런 식으로 연주하면 리듬이 흐트러지기 쉬운데,  솔라시도/레미파솔/라시도레/미파솔라/ 식으로 4개의 그룹으로 묶어서 연주한다고 생각하면 4개만 연주하면 되기 때문에 연주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이다.

5. 왼손과 오른손의 조화
 빠른 패시지를 연주할 때, 아무리 왼손이 준비가 잘 되어 있어도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핑거링과 보잉의 조화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빠르게 연주하다보면 급한 마음에 손가락도 박자대로 돌리고, 활도 박자대로 빠르게 갈겨대게 될 때가 있다. 물론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박자대로 연주하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왼손의 핑거링과 오른손은 보잉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서 박자대로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기계가 연주한다면, 핑거링의 템포와 보잉의 템포를 동일하게 맞춰 주면 깨끗한 소리가 나겠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왼손과 오른손이 똑같은 템포로 연주한다고만 생각하고 연주를 한다면, 전체적인 템포는 맞겠지만, 왼손과 오른손의 미세한 템포 차이 때문에 미세한 잡음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고치기 위해서는 항상 왼손이 먼저 음정을 짚고 준비된 상태 이후에 활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 즉, 왼손은 박자와 정해진 템포대로 연주를 하고, 보잉은 항상 손가락으로 각각의 음정을 짚은 것을 확인한 후에 핑거링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템포만 믿고, 왼손과 오른손을 그냥 템포대로만 연주하는 것과 이렇게 연주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요약하자면, 항상 손가락으로 음정을 먼저 짚은 후에 보잉을 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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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이나,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아무리 연습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즐거움이 아닌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자체의 특성상 겨우 소음에서 탈피한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최소 3~4년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에서 잘못된 자세와 연습방법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오히려 연습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악기이든간에 기본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겠냐마는, 바이올린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기가  탄탄해야만 하는 악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기본기 중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기본 자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바이올린을 처음 배우기 작할 때 전공하지 않은 선생님으로부터 시작한 나로서는 딱 2년 정도 배우다 보니 이후 실력이 전혀 늘지 않고 오히려 퇴보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기본기를 제대로 모른 상태로 2년간 연습한 후와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상태에서 똑같은 시간 동안 연습한 이후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기본기와 기본 자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바이올린 소리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테크닉은 보잉이다. 하지만, 핑거링은 보잉에 우선한다. 손가락으로 음을 민첩하고 정확하게 짚지 못한 상태에서 아무리 완벽한 보잉을 한다한들 그것은 삑사리에 불과한 것이다.
 지판에서 민첩하고 정확하게 손가락을 돌리기 위한 왼손의 기본 자세를 알아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1. 아래팔과 손목은 일직선이 되게 한다.(손목이 바깥이나 안쪽으로 꺾이지 않게 함)
 2. 엄지는 손가락의 첫째 마디 정도가 바이올린의 넥에 닿도록 하고(지나치게 내려오거나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도록), 절대 바이올린의 넥에 힘을 주어 눌러서는 안된다.(최소한의 힘으로 넥을 받치는 느낌)
 3. 핑거링을 할 때 집게 손가락이 넥에 꽉 붙지 않도록 주의한다.
 4. 현을 짚을 때는 소리를 명확하게 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힘으로 살살 짚고 살살 뗀다.
 5. 현을 짚고 뗄 때, 손가락의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현 위 최소한의 높이에서 짚었다 최소한의 높이로 뗀다)

 너무나 잘 알려진 원칙인데 손가락이 안돌아간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보면 위의 네가지 원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첫번째 원칙인 아래팔과 손목이 일직선이 되게 하는 것은 위 사진에서 보듯 손목이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꺾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손목이 꺾이게 되면 부자연스런 힘이 가해져 유연한 핑거링에 장애가 된다.  
 두번째와 세번째 원칙은 서로 일맥 상통하는 원칙이다. 소리를 명확하게 내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바이올린을 꽉 붙잡고 잔뜩 힘을 주고 핑거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정반대로 해야 한다. 바이올린은 어차피 턱이 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 잡아도 떨어지지 않는다. 왼손 엄지는 첫번째 마디가 넥을 살짝 받쳐주는 느낌으로 최소한의 힘으로 받쳐주는 수준으로 그냥 넥에 접촉만 시켜주고, 왼손 집게 손가락도 넥에 꽉 붙여서는 안 된다. 넥과 집게 손가락에 작은 공간 정도가 나거나 닿아도 살짝 닿는 정도로만 해야 한다. 엄지를 넥에 꽉 붙이고 집게까지 꽉 붙이면 손가락이 안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엄지와 집게를 꽉 붙인 상황에서는 당연히 포지션 이동도 쉽게 되지 않아 민첩한 핑거링이 불가능해진다.
 다섯번 째 원칙은 손가락을 빨리 돌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흥분해서 손가락으로 현을 최대한 꼭꼭 눌러주고 현에서 손가락을 뗄 떼도 하늘 높이 뗐다가 다시 짚을 때도 번지점프하듯이 고공 낙하를 하면서 손가락이 안돌아간다고 불평하지는 않는가? 완전히 반대로 해보라.
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살살 눌러도 명확한 소리를 내 준다. 현을 있는 힘껐 꾹꾹 그것도 손가락의 누르고 떼는 움직임의 폭도 최대한으로 해주면 손가락은 당연히 안 돌아간다. 완전히 반대로, 최소한의 힘으로 최소한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현을 짚고 떼는 습관을 들이면 상당한 향상을 볼 수 있다. 향상을 보일 수 있다기보다는 이렇게 짚는 것이 원칙이다. 빠른 패시지든 느린 패시지든. 물론 현을 누르는 압력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절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힘을 빼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짚는 습관을 들여라.
 중국 무술 영화를 보면, 항상 똑같이 나오는 말들이 힘을 빼라는 것이다. 어떻게 힘을 빼고 때리면서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힘을 빼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왼손이 안돌아간다면 힘을 한 번 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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