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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

알렉산더 마르코프(Alexander Markov)

by violins 2008.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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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마르코프(Alexander Markov)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바이올리니스트로, 니콜로 파가니니의 작품, 특히 '24개의 카프리스'에 대한 경이로운 해석과 연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으며, 이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마르코프는 완벽한 테크닉과 깊은 음악성을 겸비한 연주자로 평가받으며, 특히 파가니니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독창적인 해석과 왼손 피치카토 같은 고난도 기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클래식 음악계를 넘어 그는 제임스 레밍턴과 함께 '록 협주곡(Rock Concerto)'을 작곡하고, 특별히 제작된 6현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며 록 음악과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혁신적인 음악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러한 다재다능함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은 예후디 메뉴인 경과 같은 거장들로부터 "우리 시대 최고의 바이올린 거장 중 한 명"이라는 극찬을 받게 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생애, 음악적 성과, 독특한 연주 스타일, 그리고 클래식과 록을 넘나드는 그의 폭넓은 음악 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그의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초기 생애와 음악 교육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1963년 1월 24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저명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인 알버트 마르코프(Albert Markov)는 그 자체로 뛰어난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지휘자, 그리고 교육자였으며, 알렉산더의 음악적 여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첫 바이올린 스승이었고, 알렉산더는 아버지로부터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음악 교육을 받으며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어린 알렉산더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흡수하며 바이올린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8살의 나이에 알렉산더는 이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독주자로 무대에 설 만큼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때로는 아버지 알버트 마르코프와 함께 이중 협주곡을 연주하며 부자(父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호흡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재능 있는 아이의 조기 교육 성공 사례를 넘어, 아버지의 음악적 유산과 가르침이 아들에게 온전히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다져진 이러한 무대 경험과 아버지와의 음악적 교감은 훗날 그가 세계적인 연주자로 발돋움하는 데 튼튼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75년(또는 일부 자료에 따르면 14세 때), 마르코프 가족은 더 넓은 음악적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립니다. 특히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초청이 이주에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젊은 알렉산더에게 더 넓은 세상과 다양한 음악적 자극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그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잠시 이반 갈라미언(Ivan Galamian)에게 사사하기도 했지만, 그의 주요 스승은 여전히 아버지 알버트 마르코프였습니다. 갈라미언의 학구적인 접근 방식보다는 아버지의 직관적이고 자유로운 지도 방식이 당시 반항적인 십대였던 알렉산더의 성향과 더 잘 맞았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강점을 살려주면서도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도록 지도했으며, 동시에 아들 스스로 음악적 방향을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유연하고 통찰력 있는 가르침 덕분에 부자는 스승과 제자로서 훌륭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982년,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며 공식적으로 미국인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그가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같은 해, 그는 만 19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 권위의 바이올린 콩쿠르 중 하나인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 참가하게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탄탄한 기본기와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해석,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연마한 눈부신 기교는 마침내 이 권위 있는 무대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알렉산더 마르코프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과 화려한 데뷔

1982년,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제노바에서 열린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금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 콩쿠르는 바이올린계의 '올림픽'이라 불릴 만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로, 19세의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이곳에서 우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 음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은 단순한 수상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것은 마르코프가 니콜로 파가니니의 음악적 계승자로서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며, 그의 이름 앞에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은 마르코프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파리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 등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로린 마젤, 샤를 뒤투아,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이반 피셔 등 당대 최고의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추며 국제적인 연주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나갔습니다. 그의 연주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모았고, 특히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전곡 연주 리사이틀은 여러 나라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면서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습니다. 단 한 번의 리사이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였으나, 마르코프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1983년(또는 1987년)에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1987년에는 뛰어난 젊은 연주자에게 수여되는 권위 있는 상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Avery Fisher Career Grant)를 수상하며 그의 빛나는 재능을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에이버리 피셔 홀(現 데이비드 게펜 홀)에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몬트리올 심포니(샤를 뒤투아 지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반 피셔 지휘), 디트로이트 심포니, 뉴저지 심포니, 시애틀 심포니 등과의 협연을 통해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는 휴스턴, 볼티모어, 신시내티, 예루살렘 오케스트라 등과도 협연하며 쉴 틈 없이 바쁜 연주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이러한 화려한 데뷔와 성공적인 초기 경력은 그가 단순히 뛰어난 테크닉을 가진 연주자를 넘어, 깊이 있는 음악성과 카리스마를 지닌 아티스트임을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파가니니와의 깊은 연결고리는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축이 되었으며, 이는 그의 연주 스타일과 레퍼토리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연주 스타일과 레퍼토리: 파가니니의 현대적 계승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연주 스타일은 '완벽한 테크닉'과 '불같은 열정', 그리고 '독창적인 해석'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는 니콜로 파가니니로 대표되는 19세기 비르투오소 바이올린 연주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연주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마치 파가니니가 환생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압도적인 기교와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습니다. 파가니니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코프 역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극한의 기교를 탐구하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테크닉은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그의 테크닉과 음색에 대해 "비난의 여지가 없다(beyond reproach)"고 평했으며, 이는 그의 기술적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연주에서 그의 기교는 절정에 달합니다. 이 작품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요구되는 거의 모든 고난도 기교를 집대성한 '바이올린의 경전'과 같은 곡인데, 마르코프는 이 난곡들을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연주해냅니다. 빠르게 질주하는 아르페지오와 스케일, 현란한 왼손 피치카토, 숨 막히는 도약과 중음주법 등 상상을 초월하는 기교들이 그의 손끝에서 완벽하게 구현됩니다.

특히 '24개의 카프리스' 중 24번에서 보여주는 그만의 독특한 왼손 피치카토 기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질 만큼 유명합니다. 브루노 몽생종 감독이 그의 카프리스 연주를 영화로 제작했을 정도이니, 그의 연주가 얼마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카프리스 음반(Erato 레이블, 1990년 발매)과 라이브 연주는 발매 당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았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와 애호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르코프는 단순히 기교만 뛰어난 연주자가 아닙니다. 그는 "오늘날 정상 음악가들의 연주가 누가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적인 해석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 고 말하며, 자신만의 강력하고 독특한 해석을 고집합니다. 그는 현란함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잔잔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연주를 지향하며, 완벽한 테크닉 위에 서정성을 더해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연주는 때로는 불같이 뜨겁고 열정적이지만, 때로는 속삭이듯 섬세하고 감미롭습니다. 이러한 다이나믹한 표현력은 그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그의 레퍼토리는 파가니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는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작품들 이나 비외탕(Vieuxtemps)의 바이올린 협주곡 시리즈 등 낭만주의 시대의 주요 바이올린 레퍼토리에서도 뛰어난 해석과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비외탕 협주곡 음반은 그의 파가니니 카프리스 음반과 더불어 명반으로 꼽힙니다. 또한 프랑크, 바흐, 모차르트, 그리그 등 다양한 시대와 작곡가의 작품을 아우르는 앙코르 앨범 등을 통해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알버트 마르코프와 함께 듀오로 연주하며 부자간의 음악적 교감을 나누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바이올린 연주 자세나 활 잡는 방식 등이 다소 비관습적(unconventional) 이라는 평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때로는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예술가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는 파가니니가 시대를 앞서가며 모든 것을 혁신했던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위험은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끊임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예술가입니다.

아래 표는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연주 스타일과 주요 레퍼토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구분 특징 주요 레퍼토리
연주 스타일 - 완벽하고 압도적인 테크닉 (특히 왼손 피치카토)
- 불같고 열정적인 사운드
- 독창적이고 강력한 해석 (획일성 거부)
- 서정성과 깊은 감동 추구
- 다이나믹한 표현력
- 다소 비관습적인 연주 방식
-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Op.1,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라 캄파넬라, 베니스의 사육제
- 비외탕: 바이올린 협주곡 시리즈 (특히 4, 5번)
-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
- 기타: 프랑크, 바흐, 모차르트, 그리그 등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

크로스오버 활동: 록 협주곡과 일렉트릭 바이올린

알렉산더 마르코프의 음악적 여정은 클래식 바이올린 솔리스트로서의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넘어 다른 장르, 특히 록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시도는 그를 단순한 클래식 연주자가 아닌, 다재다능하고 매혹적인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의 크로스오버 활동의 핵심에는 '록 협주곡(Rock Concerto)' 이라는 독창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이 곡은 마르코프가 제임스 V. 레밍턴(James V. Remington)과 함께 공동 작곡한 것으로, 일렉트릭 바이올린, 록 밴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대한 스케일의 크로스오버 작품입니다. 클래식의 웅장함과 록의 강렬한 에너지가 결합된 이 작품은 기존의 음악적 틀을 깨는 신선한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록 협주곡'을 위해 제임스 레밍턴은 마르코프만을 위한 특별한 악기를 디자인하고 제작했습니다. 바로 6현 금장 일렉트릭 바이올린입니다. 이 악기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특허 제작품으로, 바이올린과 기타를 혼합한 듯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악기가 실제 22캐럿 금으로 덮여 있다는 점입니다. 마르코프는 이 특별한 악기를 통해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율에서 기괴하고 강력한 선율까지" 아우르는 극도로 다이나믹한 사운드를 구현해냅니다. 그는 주로 마샬(Marshall) 앰프를 사용하여 일렉트릭 바이올린의 사운드를 증폭시킵니다.

마르코프가 록 음악에 매료된 것은 십대 시절부터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메탈리카(Metallica)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같은 록 밴드의 음악을 듣는 것을 보며 그는 록 음악이 가진 새로운 표현 방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록 아티스트들이 단순히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곡을 직접 쓴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미 바이올린 연주 기법 면에서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지만, 작곡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의 록 음악적 우상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나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 와 같은 일렉트릭 기타의 거장들이었습니다.

'록 협주곡' 콘서트는 클래식 팬과 록 팬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공연 몇 주 전부터 티켓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르코프는 이 공연을 통해 클래식과 록 팬들을 연결하고, 심포니 음악에 거리감을 느끼는 젊은 청중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또한 아이들을 위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에서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 후 금장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선보이며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심지어 뉴욕 바클레이스 센터에서 열린 NBA 경기 하프타임 쇼에서 2만 5천 명의 관중 앞에서 연주한 경험도 있습니다. 그는 먼저 클래식 바이올린으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을 짧게 연주하여 클래식 뿌리에 대한 존경을 표한 뒤, 금장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록 음악을 연주하여 관중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처럼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클래식 음악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록 음악의 에너지를 수용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두 장르를 융합하는 선구적인 아티스트입니다. 그의 크로스오버 활동은 단순히 장르를 섞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음악 세계를 연결하고 새로운 청중을 개발하며 음악의 외연을 확장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평가 및 영향력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현존하는 가장 매혹적이고 다재다능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연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이올리니스트", "19세기 비루투오조 레퍼토리에서 으뜸가는 바이올리니스트", "현존하는 가장 매력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와 같은 최상급의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이러한 평가는 그가 단순히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주자를 넘어, 청중을 사로잡는 강력한 예술적 매력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세기 바이올린의 거장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경은 마르코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극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현명하고 음악적인 재질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이다.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전 세계 음악 애호가의 마음에 되새겨질 것이며 현 시대의 바이올린 대연주가의 기록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메뉴인과 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로부터 이러한 찬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마르코프의 예술적 성취와 위상을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파가니니 음악의 현대적 부활과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24개의 카프리스' 녹음과 연주는 파가니니 음악이 가진 악마적인 기교와 깊은 음악성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파가니니가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바이올린 기법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후대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파가니니 해석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으며, 일반 대중에게는 파가니니 음악의 매력을 다시금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클래식과 록 음악을 넘나드는 그의 크로스오버 활동은 장르 간의 벽을 허물고 음악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록 협주곡'과 같은 혁신적인 시도는 클래식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으며, 서로 다른 장르의 팬들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습니다. NBA 경기장과 같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의 연주는 클래식 음악의 고정관념을 깨고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아버지 알버트 마르코프와의 관계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아버지는 그의 첫 스승이자 음악적 멘토였으며, 두 사람은 함께 연주 활동을 하며 부자(父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독특한 유대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 알버트 마르코프 역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경력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교육자로서, 아들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부에서는 아들 알렉산더보다 아버지 알버트의 테크닉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의 비관습적인 연주 스타일이나 록 음악과의 접목에 대해 모든 이들이 긍정적인 평가만 내리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알렉산더 마르코프가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예술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뛰어난 기교와 깊은 음악성,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혁신성을 바탕으로 현대 바이올린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으며, 앞으로 그의 음악적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연주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니콜로 파가니니의 음악적 유산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나아가 클래식과 록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모스크바 태생으로 아버지 알버트 마르코프로부터 음악적 기초를 다진 그는, 19세에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이라는 쾌거를 통해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이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와의 협연, 권위 있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수상 등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의 연주는 완벽에 가까운 테크닉과 불같은 열정, 그리고 획일성을 거부하는 독창적인 해석으로 특징지어집니다. 특히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연주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기교와 깊이 있는 음악성은 그를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가니니처럼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강렬하고도 서정적인 음악 언어를 창조해냈습니다.

더 나아가 마르코프는 클래식의 틀을 깨고 '록 협주곡' 작곡 및 연주, 6현 금장 일렉트릭 바이올린 활용 등 록 음악과의 과감한 크로스오버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장르 간의 소통을 촉진하고 새로운 청중을 개발하며 음악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그의 혁신적인 예술가 정신을 보여줍니다. 예후디 메뉴인 경이 극찬했듯이, 알렉산더 마르코프는 뛰어난 기량과 깊은 음악성,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현대 바이올린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으며,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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